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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May 01. 2023

너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때가 1990년대 중반 봄이었을 거야. 너는 중3 여학생이었고 나는 너의 과외 선생님이었지. 내가 복학생이었으니깐 아마 너하고 나이 차이가 조금 있지 않았을까?      


너를 가르친 것은 몇 개월 되지 않았지만 네가 특별히 내 기억에 남는 것은 왜일까? 하고 생각을 해봐. 그 당시에 내가 운이 좋게도 몇 명에게 과외를 했지만 사실 너 같은 아이는 만난 적이 없었어. 내가 아무리 인상을 쓰고 딱딱하게 굴어도 선생님보다는 오빠처럼 나를 대하고는 했지.     


학교에서는 세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후배들에게 복학생이라고 예비역이라고 아저씨 취급을 받고는 했는데 그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너는 나를 아저씨 취급을 하지 않아서 솔직히 의외였어.     


그리고 또 하나 너의 엄마가 이왕이면 네 친구랑 둘을 한 번에 가르치면 더 많은 과외비를 벌 수 있으니 그러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었을 때 나는 어리둥절했어.

왜냐면 너 혼자 수업을 받는 것이 더 이득이었으니깐. 너한테만 더 집중을 할 수 있고.

그런데도 네 엄마는 순수하게 내가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과외비를 벌 수 있도록 네 친구 중에 한 명을 같이 과외를 받을 수 있도록 소개해 준 거야.   

  

그렇게 두 명을 동시에 과외를 하게 되었어. 늘 활달하고 호기심 많은 중3 여학생 두 명을 상대하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단다. 내주는 숙제는 해오지도 않고 수업시간에는 풀라는 문제는 풀지 않고 뭐가 그리 질문이 많은지...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서 처음 교사가 되어 교탁에 섰을 때 학생들에게 받는 질문을 받는 것 같았어.

“선생님의 첫사랑은 언제였어요?”

“우리 오늘 수업하지 말고 그냥 놀면 안 돼요?”

“엄마가 피자 시켜놨어요. 일단 그거 먼저 먹고 해요.”

“소화가 잘 안 되어서 집중이 안 되어서 그래요. 미팅 나갔던 얘기 해주세요.”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너희들이 과외비가 들어 있는 봉투를 가지고 있다가 나에게 건네어 줄 때면 너희는 늘 그냥 주는 경우가 없었지.

“수업 끝나고 맛있는 거 사 주세요. 약속을 하면 드리고 아니면 못 줘요.”

말괄량이 같으면서도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는 너희들 때문에 많이도 웃었고 즐겁게 과외를 할 수 있었단다. 물론 벅차기도 했었지. 왜 그렇게 말을 잘 듣지 않는지.     


중학교까지만 한국에서 다니고 외국으로 유학을 가기로 결정이 되어있다는 너희 두 명을 보며 한 편으로는 부러웠단다. 다른 한 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고.

둘 중에 특히 네가 기억이 나는 것은 몇 가지 일 때문이란다.     


너는 그 당시에 내 삐삐의 안내 멘트에 네 목소리로 녹음을 했었어. 기억나니?

내 기억으로는 이런 멘트였던 것 같은데.

“이 삐삐는 ㅇㅇㅇ선생님의 삐삐입니다. 문자는 1번 음성은 2번을 눌러주시고 용건이 없으시는 분은 끊어주세요.”

이 멘트를 어떻게 네가 녹음을 하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이것 때문에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해명을 해야 했단다. 하여간 말괄량이들...      


너의 과외 선생님으로서 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너는 가끔씩 나에게 연락을 했었지. 내가 오빠처럼 느껴져서일까?

그 해 겨울 네가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 것을 알게 된 것은 어느 날 네가 우리 집으로 국제전화를 해서 알게 되었어. 아침에 네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단다. 알다시피 당시는 국제전화 요금이 엄청 비쌌잖니. 001, 002로 국제전화를 걸었던 시절 얘기니깐 아마 10초당 국제전화 요금이 계산이 되었을 거야.      


너는 타국에서 지내는 외로움 때문에 아마 나한테 전화를 한 거 같았어. 말도 잘 통하지 않고 공부는 따라가기가 벅차고 향수병이 왔었던 것 같아. 그냥 스쳐 지나간 과외 선생님이었을 뿐인 내가 생각이 나서, 우리 집 전화번호를 기억해서 국제전화를 걸었다니...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었다면 훨씬 통화하기가 수월했지만 당시는 내가 집에 있어야만 통화가 가능해서 통화하기가 쉽지 않았었지.     

 

그래서 그런지 네가 전화하는 시간은 점점 빨라졌고 막내 누나가 과외를 했던 아이가 왜 아직도 전화를 하는 건지, 그것도 요금도 엄청 비쌀 텐데 국제전화를 왜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언제까지 이 아이의 응석을 받아줄 거냐며 귀찮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무선전화기를 건넨 그 후였을거야.    

 

내가 이제 그만 전화하라고, 얘기를 했던 것이...     

 

힘들어하는 사람의 얘기를 잠시 들어주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리 매몰차게 굴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1년? 2년?

네가 유학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한국으로 들어와서 고등학교에 편입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내가 그 소식을 어떻게 들었냐고?

네가 전화를 했잖니. 선생님 저 한국에 왔어요. 이제 여기서 고등학교 다니기로 했어요. 하고 발랄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었지.     


그 이후에 어떻게 연락이 끊겼는지는 나도 잘 기억이 나지 않네. 너는 기억이 나니?

이제 너는 마흔이 훌쩍 넘었겠구나. 누군가의 엄마로 어떤 남자의 아내로 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구나. 너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네. 세월이 많이 흘러버려서.      


잠시 스쳐 지나간 과외 선생님이었을 나를 오랫동안 선생님으로 오빠로 생각해 줘서 고마웠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당시에는 너 때문에 많이 당황하기도 했지만 많이 웃기도 했단다.

그때 조금 더 너의 고민이나 상황들을 따뜻하게 들어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나도 나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거든.    

 

잠시 스쳐가는 인연이었지만 널 만나서 즐겁고 고마운 시간이었어.

아직 나는 너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단다.

이 말에 네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으면 좋겠다.

잘 살고, 행복하기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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