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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Apr 06. 2023

자작가의 연애 이야기 1

자작가 너 까인 거니?

대학교에 막 입학했던 1학년 새내기 시절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이라고 뭐 다르겠냐만은 그때의 나는 연애의 연자도 모르는 가소로운 애송이에 불과했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직 학교 내 지리도 낯설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는 새내기 시절,

스스로 나 자신은 거울도 안 보는 듯, 과 동기 여자애들이 아직 고등학생 티를 벗어나지 못한 듯 어리게만 보였던 시절,

어느 날 나는 그녀를 보았다.

찰랑찰랑 긴 머리를 휘날리며 걸어가던 그녀를.     


그날은 평소보다 학교에 일찍 도착했고 나는 벤치에 앉아 개폼을 잡으며 한가로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제 담배를 피워도 술을 마셔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 어엿한 성인이라고 생각하던 철 모르던 때였다.

다리를 꼬고 앉아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담배 연기를 허공으로 뱉어내던 나의 시선에 그녀가 포착이 되었다.      


나는 순간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그녀는 그냥 심플하게 청바지에 재킷을 입고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는데...

걸어가는 군중들 틈에서 내 눈에는 오직 그녀만 보였다.

멍하니 그녀가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얼른 담배를 발로 비벼 끄고는 그녀를 쫓아갔다.    

 

그녀는 한 건물로 들어갔고 나는 잠시 후에 그 건물이 외국어대 단과 대학 건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나는 외국어대 건물 앞을 어슬렁거렸다.

그녀를 또 한 번 만나고 싶은 마음에 그 앞을 서성거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그녀를 보았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데도 나는 한눈에 그녀를 알아볼 만큼 그녀에게서는 아름다운 광채가 나는 것만 같았다. 아니면 콩깍지?


그녀가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 나는 그녀의 뒤를 쫓았고 그녀가 한 강의실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녀가 앉은 뒷모습을 넋이 빼앗긴 채 쳐다보다가 그곳이 일어일문학 강의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남자의 심장을 요동치게 한 그녀,

연애의 연자도 모르는 자작가의 마음을 세차게 흔들어버린 그녀,

바람에 흩날리는 생머리와 청바지가 잘 어울렸던 그녀,

특히 눈이 예뻤던 그녀,

그녀는 일문과 학생이었다.    

  

나 혼자만의 짝사랑을 키워가던 나는 용기를 내었다.

이렇게 몰래 훔쳐보는 것만으로 더 이상 나의 감정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사랑에 빠진 걸까?   




어느 날 외대 앞을 서성거리던 나는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 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나는 마치 중요한 첫 발표를 앞둔 발표자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으리라.

무슨 일이지? 하고 쳐다보던 그녀에게 마른침을 꿀꺽 삼킨 내가 간신히 입을 열어 말했다.   

  

“저어, 저는 ㅇㅇ과 1학년 ㅇㅇㅇ라고 합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 자기소개를 하는 나를 그녀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런데요?”

“저기, 그러니까 제가...”

안절부절못하며 더듬더듬 말을 하고 있는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던 그녀의 눈빛을 보자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불끈 주먹에 힘을 주고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간신히 뱉어냈다.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놀랐다기보다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묘한 웃음을 지어 보이던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한테 지금 대쉬하는 거예요?”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켜고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서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귀엽다는 듯 나를 쳐다보던 그녀의 얼굴이 미소가 번졌다.

“근데 어쩌나? 나는 3학년인데.”

그녀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3, 3학년이요?”

어리게만 보였던 그녀가 2년이나 선배라니...

“나는 연하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호호호.”     


그때만 해도 여자의 나이가 남자보다 많은 연상연하 커플이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솜털이 보송보송한 풋내기 같은 남자애라 남자 같은 느낌조차 들지 않았던 것일까?


마침 건물에서 나오는 그녀의 친구가 그녀를 아는 척했고 그녀는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남겨두고 친구와 함께 걸어갔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두 여자의 어깨가 들썩거리는 것이 보였고 그녀의 옆에서 걸어가던 친구가 뒤를 돌아서서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다시 그녀에게 뭐라고 말을 하면서 웃으며 멀어져 갔다.     


아마 이런 얘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어머, 얘 너 아직 죽지 않았구나? 교정에서 대쉬를 받다니... 그것도 1학년에게...’

‘그래도 귀엽기는 하던데 커피라도 한잔 같이 마셔줄 걸 그랬나?’

‘꼬래 남자라고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아하하하하~’    

 

나의 첫 번째 대쉬는 그렇게 까였다.

처참하게.    

 

그날 나는 술을 마셨다.

세상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면서.

실연이라는 말을 이런 상황에 써도 되지는 모르지만 실연당한 아픔을 달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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