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저녁을 먹기 전 한가한 시간에 커피 한잔을 하러 집 근처 카페에 갔다. 혹시 자리가 없을지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빈자리는 넉넉했다. 아내가 주문을 하는 사이에 넓은 자리를 맡아서 앉았는데 에어컨 바람이 조금은 춥게 느껴졌다. 그래서 에어컨 바람이 덜 오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앉기로 했는데 잘 결정한 것 같다.
평소에는 냉방이 잘 되어있는 곳을 찾아다녔고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자리에 앉는 편인데, 감기 기운이 있다 보니 에어컨 바람이 덜 오는 곳을 찾아 앉게 된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인간이 나약한 건지 아니면 간사한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처럼 따뜻한 커피를 주문해서 마셨다.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아내는 따뜻한 라떼를 앞에 두고 창밖을 바라보는데 비가 조금씩 내렸다. 비가 올 것 같지 않은 날씨인데 소나기가 내리려나,라고 생각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산을 가져왔는데 가져오기를 잘했다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내는 나에게 거봐 내 말 듣기를 잘했지,라는 표정으로 나에게 턱을 치켜들었다. 우리가 들어온 이후에 몇 사람이 더 들어와서 앉으니 카페 안의 좌석은 빈자리가 몇 좌석 보이지 않았다.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커피를 마시는데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동남아에서 내리는 스콜처럼 거세게 비가 내렸다. 바람까지 불면서 비가 사선으로 내리면서 물보라도 일어나는 것이 이럴 때 밖에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갑작스러운 비에 우산을 미처 들고 나오지 못한 사람은 비를 피해 가까운 건물로 이동하려고 뛰는 모습도 보였다. 자전거를 타다가 쫄딱 비를 맞고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도 보였다.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사람들 중에 작은 우산으로 거센 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이미 신발과 치마가 다 젖고 간신히 머리와 얼굴만을 가리기도 급급해 보이는 모습도 보였다.
잠시 비를 피해 있다가 가도 좋으련만 아마도 시간에 쫓기는 일이 있는 것 같다.
한 남자가 손으로 가방을 머리 위로 올리고서 걸어가는데 이미 온몸은 비로 젖어 있는 상태다. 근처 편의점에서 비닐우산을 사던가 아니면 비가 조금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다 가지 저렇게 비를 흠뻑 맞고 걸어가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주말 내내 감기기운으로 힘들다 보니 괜히 그 남자가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는 어딘가 둘러보며 길을 찾아갔다.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은 모습으로 바삐 걸어가는 것이 모르긴 몰라도 아마도 중요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폭우 속에서 우산도 없이 급히 발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보아서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비가 오는 거리의 풍경을 잠시 동안 바라보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를 마셨다.
나는 시원스레 퍼붓는 비 내리는 광경을 보았다. 거세게 비가 내리는 바깥과는 달리 실내 안에서는 비가 내리는 바깥풍경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커플들과 혼자 와서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쪽 구석에 놓인 제네바 스피커에서는 언제나처럼 팝송이 흘러나오고 한 아이가 부산스레 뛰어다니는 소리에 신경이 쓰였지만 카페 안의 사람들은 밖의 비 내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 사람들의 시선은 바깥풍경에 무관심해 보였다.
나는 비 내리는 소리를 듣고 싶은데 여기서는 들을 수 없을 것 같고, 그냥 비 오는 광경만 잠시 멍하게 바라보았다. 동남아의 스콜처럼 내리는 비를 보고 있자니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고, 그대로 있자니 언제 그칠지 모르고 마치 카페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그런 타이밍에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잠시 일어났다 사라지는 생각이니 크게 의미를 둘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게 거세게 내리던 비가 어느 순간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역시 지나가는 소나기였던 것 같다.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자니 허리가 불편하고 당긴다. 허리에 든 담 때문이리라. 아내는 나보고 허리 좀 피고 앉아서 있지 왜 그리 구부정하게 앉아 있냐고 하지만 담 때문에 허리가 아파서 그런 건데 잠시 까먹었나 보다. 어제오늘 담 때문에 엄청 고생하고 있는데.
빗방울이 가늘어지고 커피 잔에는 이미 식어버린 커피가 거의 바닥을 보이고 허리도 뻐근하고 이제는 슬슬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 되었나 보다. 우리는 혹시나 비가 다시 거세게 올까 봐 빗방울이 가늘어진 틈을 타서 그만 집에 가기로 했다.
조용히 팝송을 들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오늘은 그러한 시간을 많이 가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오랜만에 창가에 앉아 비가 오는 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볼 수 있었다. 빗방울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할 때부터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지고 마치 태풍이라도 온 것처럼 바람이 불면서 폭우가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비 오는 풍경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은 참 오래간만의 일인 것 같다. 오래간만에 그런 시간을 가져서 나름 좋았던 것 같다. 음악을 들으며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진 것에.
다음에는 비가 오는 소리까지 함께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 오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았을 때가 언제였는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주말 오후 한 카페에서 나는 그렇게 팝송을 들으며 커피를 음미하면서 비가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2019년 시원스레 소나기가 내렸던 어느 여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