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게 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
나는 네가 당장 필요하다고 했는데
아내는 내년에 사자고 했지.
내년에 새집으로 이사를 가면
그때 너를 사면 좋겠다고 하는 아내의 말에
나는 당장 필요한 데 굳이 내년까지 기다릴 필요가
뭐가 있냐고 주장을 했어.
그렇게 서로의 의견이 조금 달랐어.
이미 우리에게는 3대 이모님 중에 하나인
로봇청소기를 가지고 있었거든.
그런데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성능이 조금 아쉬웠던 터라
로봇청소기보다 가격이 더 비싼
너를 구매하기까지는 아무래도 오랜 시간 생각을 해야 했지.
주위 사람들에게 너에 대해 물어도 보고
구매 후기도 살펴보고
여러 제품군 중에서 가격대를 고려하여
산다면 어느 제품을 사야 할지
심사숙고를 한 끝에
몇 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너를 만나게 되었다.
박스 안에 담겨져 온 네가
상자 속에서 나와
말끔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감동 그 자체라고 말하고는 싶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고 살짝 설렜단다.
설치가 끝나고 작동 법을 알려주는 설치기사의 말에
아내와 나는 몇 가지 질문을 했고
우리에게 간단한 답변을 해 준 기사가 다음 일정을 위해 떠난 뒤
비로소 우린 너와 온전히 마주할 수 있었어.
그거 아니?
너의 모습이 아주 예뻤다는 거.
우리가 참 잘 골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처음 너를 사용해 보았을 때
우린 깜짝 놀랐어.
깔끔하게 건조되어 나온 빨래의 감촉은
너무나 좋았고 충분히 만족스러웠거든.
그러나 모든 것이 다 좋을 수는 없는 건가 봐.
건조가 끝난 후
티셔츠가 작아지고 바지가 줄었을 때는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
백 퍼센트 만족할 수는 없는 법,
너의 역할은
이불이나 수건의 건조 시에 특히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지.
흐린 날이건 비가 오는 날이건
특히 장마철에
이제는 너의 존재로 인해
빨래를 말리는 일에서 많은 걱정을 덜 수가 있게 되었어.
3대 이모님이라 불리는 너,
이모님이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못해
제일 윗자리는 네 자리가 아닌가 싶어.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우리 빨래를 잘 부탁해.
빠득빠득하게 잘 건조해 주리라 믿어.
보답으로 가끔씩 네 안에 쌓인 먼지를 제거해 주는 것을 잊지 않을게.
물론 깨끗이 세척해 주는 것도.
202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