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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Mar 24. 2022

다 한 때야

어느 주말 공덕역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젊은 커플이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여자는 남자의 품속으로 파고들었고 남자는 재킷으로 그녀를 감싸주었다. 그들의 눈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느껴지지 않는 듯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아니, 왜 여기 사람들 많은 데서 저런대? 다른 데 가서 껴안든지 말든지 하지.”     


아내는 뭐가 그리 아니꼬운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나에게 속삭였다. 아내는 평소 길거리나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커플들의 애정행각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왜 보기 좋은데.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외치고 있잖아.”     

나의 말에 아내는 그래도 이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리 사랑해도 그렇지 이런 공공장소에서 저러는 건 좀.”     


혹시 아내는 부러운 마음에 그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기도 저렇게 당당하게 애정표현을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니 심술이 나서 그러는 건 아닐까?     


“자기도 나이를 먹었나 보네. 그런 얘기를 하는 것 보니. 저런 것도 젊으니깐 가능한 거야. 다 한 때라고. 그나저나 우리도 한 번 해봐?”     


내가 넌지시 아내를 떠보자 그녀는 바로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뭐? 여기서? 미쳤어?”     


“그렇겠지? 우리가 여기서 저 젊은 커플처럼 껴안고 있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쑥덕거릴 거야. 망측하다든지 나이 먹고 나이 값을 못한다고 하든지 아마 불륜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든지 등등 말이야.”     


그 젊은 커플은 신호가 바뀌어도 뭐가 그리 아쉬운지 포옹을 풀지 않았다. 헤어짐이 그리 아쉬운 걸까?   

   



나도 아내와 저런 시절이 있었다. 헤어지기 아쉬워서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고 그저 이 어둠이 야속하게만 느껴지던 그런 시간들이. 아무리 땀이 나도 맞잡은 손을 놓지 않던 시절이. 누군가가 볼 새라 얼른 볼에다가 뽀뽀를 하고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가던 시절이.     

 

그러고 보니 젊음이니 청춘이니 하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나도 이미 나이가 들은 것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손을 잡고 걷기만 해도 주위에서 두 분은 사이가 너무 좋은 것 같다는 말을 듣는 나이가 되었다. 무슨 다정한 애정표현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손만 잡고 걸었을 뿐인데.     


예전에 이런 표현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살이 내 살인지 네 살인지 만져도 느낌이 없네.’

설마 내 살인지 네 살인지 구분을 못할까? 조금 과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아마 그 정도로 부부 사이에 애정이 식었다는 것을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리라.     


사랑도 열정도 도전정신도 패기와 용기도 다 젊음의 특권일 것이다. 그때를 마음껏 누리시길...... 다 한 때라는 것을,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닫는 시기가 올 것이다.

머리숱이 적어지고 노안이 오고 배 주위에는 지방이 쌓이고 체력이 예전 같지 않고 뭘 한 것도 없는데 숨이 거칠어지는 시기가 머지않아 곧 올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젊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1도 없다. 그 시절을 또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숨이 막힐 것 같다. 뭐가 됐든 지금 이대로가 좋다.      


자연스레 나이가 들어가는 것, 세월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게 두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지나고 보면 젊음도, 청춘도, 불타는 사랑도, 돈도, 명예도, 권력도, 우리네 인생도 다 한 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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