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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Mar 22. 2022

애가 지금 몇 살이에요?

아내와 나는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중간에 엘리베이터가 멈추더니 60대로 보이는 한 노부부가 한 명은 갓난아이를 안고 한 명은 빈 유모차를 끌고 탑승을 했다. 안겨 있는 아기는 아직 갓난아이로 옷차림으로 보아서는 남자아이 같았다.      


아기들은 옷 색깔이나 옷차림을 보지 않고는 남자애인지 여자애인지 구분하기가 사실상 쉽지가 않다. 그래서 때로는 잘못 얘기했다가 쑥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경우도 몇 차례 있었다.      


여자애인데 남자애로 착각을 해서 참 잘생겼다고 말하기도 했고 장군감처럼 생겼다고 말하기도 해서 분위기가 어색해진 적도 있다. 또한 남자애인데 여자애로 착각을 해서 참 예쁘장하게 생겨서 나중에 인기가 많겠다고 말했다가 남자애예요, 라는 말을 듣고는 뻘쭘해진 적도 있다.      


품에 안긴 아기가 낯을 가리지 않는지 우리를 보고 싫다고 고개를 돌리거나 피하지 않고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생긋 웃어 보였는데 그 미소에 우리 부부는 저절로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바뀌면서 “아이가 너무 귀엽네요.”라는 말이 나왔다.      


아기는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그 잠깐 동안 신기한 듯 우리를 쳐다보았는데 기분이 좋은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유순한 아이인지 표정이 밝았다. 일단 우리를 보고 낯가림을 하거나 땡깡을 피우거나 싫다고 도리질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 아이는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두 분의 나이가 60대로 보이는 것으로 봐서 두 분의 늦둥이는 아닌 것 같고 손주를 봐주는 것으로 보였다.

아직 돌도 되지 않은 백일 정도 되었을까 싶은 아이를 보고 있자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마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지어주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다행히 그분들도 친근감이 있는 분들인지 우리가 아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아도 싫어하는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를 우리 앞쪽으로 내밀어 더 잘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때로는 모르는 사람이 물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라도 할지라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애를 쳐다보거나 귀엽다고 까꿍 같은 것을 할 때 노골적으로 싫다는 표정을 분명히 짓는 사람도 있어서 과거와는 다르게 요즘에는 분위기를 봐가면서 해야 한다.     

 

아기 엄마가 싫어하는 표정을 짓거나 내키지 않아 한다면 바로 아이를 쳐다보던 시선을 딴 데로 돌리거나 괜한 오버를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나 지금과 같은 코로나 상황에서는 더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서고 우리는 그분들이 먼저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내렸다. 1층 공동 출입문을 막 나서는데 아내가 갑자기 뜬금없이 앞에 걸어가는 노부부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     


“애가 너무 순하고 예뻐요. 근데 아이가 지금 몇 살이에요?”      


고개를 돌려 쳐다보던 그 아이의 할머니의 표정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지금 뭐라고 한 거야? 갓난아기한테 몇 살이냐고 물어본 거야?’라고 말하는 듯 어이없어하던 그 표정을.


아기를 안고서 옆에 서 있던 할아버지도 나도 아내의 질문에 순간 당황을 했다.     

 

“몇 살이요? 이제 7개월 됐어요.”     


할머니가 대답하고 나서 아내를 쳐다보는데 그 시선이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근데 이 여자 뭐지? 애를 낳고 길러보지도 않았나? 나이도 왠간히 있어 보이는데 돌도 안 된 아기한테 지금 몇 살이냐고 물은 거야?’   

   

그분들이 유모차를 끌고 멀어진 다음 나는 아내를 보며 얘기했다.

“아니 완전 갓난아기인데 몇 살이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해. 물어보려면 몇 주 또는 몇 개월이냐고 물어봤어야지. 할머니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잖아.”     


아내는 그제야 자기가 질문을 이상하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아이를 길러본 적이 없다 보니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너무 티를 낸 것 같다.     

 

요새는 갓난아이를 볼 일이 많지가 않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더욱더 어린아이를 볼 일이 없어졌다.

가끔은 갓난아이의 분유 냄새가 나는 볼에 코를 비비고 싶기도 하고 살며시 볼을 쓰다듬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내 손가락을 아기한테 내밀어 아기가 꼬물꼬물 한 손으로 내 손가락을 꽉 쥐는 그 느낌, 꼬물꼬물 거리는 아기의 손이 본능적으로 내 손가락을 쥐는 그 느낌을 언제 느껴보았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이제는 나도 나이가 있다 보니 주위에 아는 사람들 중에 갓난아기가 있을 확률이 더욱 적어졌다. 조카나 이런 애들이 결혼을 해서 애를 낳지 않는다면 갓난아이를 보거나 품에 안거나 살짝이라도 만질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분유 냄새가 나는 갓난아이의 뽀얀 피부, 꼬물거리는 손과 발, 괜히 발바닥을 간지럽히고 싶은 욕구를 억제하지 못하고 하지 말라는 말에도 기어이 아기의 발바닥을 간질이며 그 반응에 웃었던 기억들이 생각이 난다.

    

어른들은 아기의 웃는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려고 그 앞에서 갖은 재롱을 떨기도 한다. 어쩔 때는 보기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만큼 아기의 천진난만하고 해맑은 미소는 어른들을 무장해제시키기도 하고 껌뻑 죽게 만들기도 한다.

이 세상에 아기들의 투명하고 순수한 미소만큼 사랑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얼마 전 마트에 갔다가 우연히 우리 부부가 자주 가던 음식점 가게의 사장을 만났다.

젊은 사장이 결혼을 해서 작년 여름에 아이를 낳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란다고 하더니 카트에 앉아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를 보자 새삼 시간이 이렇게 지났구나, 하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다.      


카트에서 우리를 가만히 보고 있는 아이는 공주님으로 아마 8개월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아빠를 닮아서 아주 귀엽게 생겼고 낯가림을 하지 않는지 내가 빤히 쳐다보아도 별로 놀래거나 그러지를 않았다.

가게 사장이 아이의 볼을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면서 그새 이렇게나 자랐다며 얘기를 하는데도 아이는 뭐가 그리 신기한지 우리를 빤히 바라보면서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저녁시간이라 마트에 손님들이 많아서 더 얘기를 하지 못하고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온 뒤에 나는 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 아이가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너무 갑작스럽게 만나서 아이의 이름조차 물어보지를 못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만약 코로나 상황이 아니었다면 한번 안아 봐도 되겠냐고 아니면 적어도 아이의 손이라도 만져 봐도 되겠냐고 물어봤을 테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런 말을 꺼내지 못했다.

물론 갑작스럽게 만났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지만.

그 사장의 평소 성격으로 봐서는 네네, 한번 안아보세요, 라거나 볼을 쓰다듬어도 됩니다,라고 말을 했을 것 같은데.      


여건이 허락이 된다면 나도 뽀얀 우윳빛 볼을 손가락으로 살짝 터치해보고도 싶고 꼬물거리는 아기의 손을 내 손위에다가 살짝 올려놓고도 싶고 가만히 품에 안아서 따뜻한 아이의 체온을 느끼고도 싶다.

아마 아이에게서는 우유나 분유 냄새가 나지 않을까? 어쩌면 땀띠분 냄새가 날지도 모르겠다.   

   

갓난아기의 손과 발을 만져보고 싶다. 분유 냄새나는 볼에 코를 묻고 아기의 냄새를 맡고 싶다. 아기가 웃을 때까지 그 앞에서 갖은 재주를 다 부리고는 아기의 웃는 얼굴을 보며 세상의 시름을 다 날려버리고 싶다.   

  

아, 누구 마음 넓으신 분 어디 없을까?

손을 깨끗이 닦을 테니 잠깐이라도 아기를 안아볼 수 있고 아기의 손과 발을 만져볼 수 있게 해 주실 분 어디 없을까?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왠지 좀 이상해 보이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저 전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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