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일찍 눈이 떠지는 것이리라, 고 생각하면서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나간다.
때로는 귀찮기도 하고 때로는 꾀를 부리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일단 옷을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고 밖에 나가면 그 순간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의 상쾌한 공기, 도로에는 아직 많지 않은 차량들, 아침 일찍 출근을 서두르는 직장인들 그리고 우리처럼 아침 산책을 나온 동네 주민들을 보며 우리의 산책코스인 경의선 숲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침 6시가 조금 지난 시각 이건만 이미 산책을 나온 부지런한 사람들 틈에 섞여 우리도 부지런히 발을 움직인다.
누군가의 뒤를 따라 걷기도 하고 누군가를 추월해서 앞지르기도 하고 조깅을 하는 사람을 위해 옆으로 살짝 비켜서 주기도 하고 언덕길을 오를 때면 숨을 몰아쉬면서 입과 코를 덮고 있는 마스크가 없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더위가 한창인 요즘 산책로를 걷다 보면 때 이르게 핀 코스모스도 보고 조경을 위해 군데군데 심어놓은 꽃들을 본다. 거의 대부분 이름을 모르는 꽃들이지만 꽃을 보며 길을 걷다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은 걷다가 감나무를 올려다보았는데 그 사이 작은 열매가 맺혀 있었다. 저 손톱만 한 크기의 열매가 점점 자라서 주먹만 해지고 그 색깔이 노란빛을 띠게 되면 계절이 바뀌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묵묵히 걷는 이 시간 나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까? 내 뒤를, 내 옆을, 내 앞에서 걷는 아내는 또 무슨 생각을 할까?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걷는 것에 몰두하면 좋겠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수없이 떠올랐다가 사라져 가는 생각들에 나는 지금 걷고 있는지 무의식 중에 걸음을 옮기며 생각에 잠겨있는 것인지 모를 때도 있다.
그래도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온전히 걷건, 생각에 잠겨서 걷건, 대화를 나누며 걷건, 걸을 수 있어서 좋다.
걷기가 최고의 운동이라고 하는데 걸을 수 있을 때 부지런히 걸어야겠다.
가까운 곳에 이렇게 산책을 할 수 있는 공원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을 서로가 아끼고 보호하며 사용해야 하는데 간혹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인해 눈살을 찌푸릴 때가 있다.
어떤 경우냐 하면 사람들이 걷는 공원 바로 근처에서 흡연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담배연기가 바로 산책로로 날아들어 원치 않게 담배연기를 마시게 되는데 그럴 때면 어디서 담배연기가 들어오는 거야? 하며 그 진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리고는 한다. 산책로에서 조금만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담배를 피운다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또한 산책로 안으로 전동 킥보드는 들어올 수 없다는 현수막이 엄연히 걸려 있음에도 가끔 전동 킥보드를 타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본다.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뒤에 누군가를 태우고서 아무렇지도 않게 걷는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르게 다닐 때면 뒤통수를 잡아채서 저 밖으로 내던지고 싶은 생각도 든다.
왜 하지 말라고 하는데, 공공질서를 지키라고 하는데도 굳이 그 말을 무시한 채 그러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혼자만 사는 세상도 아닌데.
아침 산책을 나가면 아무래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을 많이 보게 된다. 아침잠이 없으신 건지,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생활화가 되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처음에 아침 산책을 나갔을 때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른 시간에 산책을 한다는 것에 그리고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조금은 놀랐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대략 50여 분 정도 아침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간다. 아침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가면 왠지 뿌듯하다. 겨우 아침 산책을 한 것 가지고 뿌듯해하다니 조금은 무안한 생각이 든다.
산책 후 집에 와서 아침을 먹기 전에 살짝 몸에 힘을 빼고 체중계에 올라가 본다. 어차피 별 영향도 없는데 왜 힘을 빼고 올라가는지 나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체중계에 올라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몸에서 힘을 빼고는 한다. 자신 있게 두 발을 떡 하고 체중계에 올린 적이 최근에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조용히 몸무게를 재고 있는데 어느새 아내가 뒤에 와서 서 있다. 그녀가 체중계가 가리키는 숫자를 보며 빙긋 웃는다. 좋냐? 하고 나는 속으로 말하며 그녀를 위해 자리를 비켜준다. 그녀가 숨을 훅 들이쉬고 천천히 체중계에 오른다. 그리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수치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체중계를 바꿀 때가 되었나? 하는 표정이다.
이봐, 이거 산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 이거 정상적으로 작동하거든.
아침 산책을 하고 와서 그런지 아침 식사가 왠지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아내는 오늘도 밥 양을 줄어야겠어,라고 말한다. 반 공기씩만 먹을까 봐,라고.
밥 양만 줄인다고 되겠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얼른 삼킨다. 그냥 묵묵하게 식사를 한다. 때로는 괜한 대답을 하는 것보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우울증 약을 먹고 난 후 평상시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진다.
산책 나가기에 조금 이른 시간이면 나는 거실에 방석을 깔고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을 한다.
자세는 명상을 하는 자세지만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가 사라져 간다.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그 자세를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은 비록 잘 되지 않더라도 하다 보면 조금씩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 내면의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옅어지기를 바라며 나는 방석 위에서 흐트러지려는 자세를 바로 잡고서 다시금 눈을 감는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하고 속으로 되뇌면서.
오늘도 저린 다리를 풀고서 시간을 확인한 나는 아침 산책을 나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런 시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꾸준하게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나에게 산책이 꼭 필요한 일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