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작가 JaJaKa May 29. 2022

야매? 야매가 뭔데?

내 기억으로는 그때가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어느 날인가 밖에서 뛰어놀고 있던 나를 막내 누나가 찾아와서는 지금 빨리 같이 집에 가자고 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누나 손에 이끌려 집으로 갔고 집에 들어선 순간 낯선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웬 낯선 남자가 집 안에서 침을 놓고 있었다. 그것도 누나의 얼굴에다가.

누나는 아픔을 억지로 참아내 가며 침을 맡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엽기적이었다고 해야 할지 공포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할지 하여간 말문이 막혀서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이마에서 볼에 이어 턱에 이르기까지 누나의 얼굴에 침이 박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침을 다 맞은 누나의 얼굴은 흡사 프랑켄슈타인 같아 보였다. 아픈지 얼굴을 찡그린 채로 제대로 말도 못 하고 방 한 곳으로 물러난 누나는 고개를 돌려 슬쩍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때 누나의 눈빛에서 뭔가 싸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게 설마 그런 이야기일 줄이야......   

  

엄마는 이미 허리에다가 상당한 양의 침을 맡고서 엎드린 상태로 있었고 나는 그때까지 왜 나를 불렀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때 옆에 앉아 있던 이모의 음성이 들렸다.     


“야, 너도 얼른 앉아서 맞아. 이 선생님이 어려운 걸음 했는데 맞을 수 있으면 오늘 다 맞도록 해.”     


나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뭘 맞으라는 것인지. 나는 아픈데도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낯선 남자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데.     


엄마는 허리가 아파서 침을 맞았다고 치고 누나는 왜 얼굴에 침을 맞았는지 궁금해하던 나에게 친절하게도 이모가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여드름 난데 맞으면 여드름이 싹 들어가. 얼굴이 만질만질해지다 못해 광이 날 거다. 그러니 너도 여기 앉아서 침 몇 대 맞아. 이런 기회가 아무 때나 오는 거 아니다. 어서 여기 앉아서 이 선생님이 놓아주는 침 맞아. 내일이면 너도 얼굴에 뭐가 난 거 싹 다 들어갈 테니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싫다는 의사를 강하게 나타냈지만 그 당시 나는 연약한 어린아이였고 이모와 누나의 억센 힘에 눌려 잔뜩 긴장한 얼굴로 방바닥에 앉혀졌다.     


엎드려 있는 엄마도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면서 괜찮다고, 별로 아프지 않다고 하면서 얼굴 피부가 좋아지는 거니깐 그냥 잠깐 동안만 참으라고 했다.

나는 얼떨결에 갑자기 얼굴에 침을 맞게 되었다.     


제대로 반항도 못한 채 내 얼굴에 침이 꽂히는 것을 잔뜩 겁에 질려서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이마에서 볼 그리고 입 주변까지 침을 맞았다. 특히 코 밑에 침을 맞을 때는 너무나 아파서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얼굴에 뭐 난 데마다 침을 놓아서 더 아팠다. 한 열방 정도 맞은 것 같았다. 내 뒤를 이어 나를 데리러 왔던 막내 누나도 침을 맞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나는 누나에 비해 그리 많은 침을 맞지는 않았지만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누나는 이십여 방의 침을 맞았다. 그렇게 침을 맞고 방 한 구석에서 다시 침을 뺄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나는 아파서 인상을 찡그린 채로 누나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나, 저 아저씨는 누구야? 의사야?”     


“이모가 그러는데 정식 의사는 아니고 야매래.”     


“야매? 야매가 뭔데?”     


“야매가 뭐냐면 기술은 뛰어난데 면허증이 없어서 개업을 할 수 없는 사람을 말하는 거야.”     


나는 누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했다. 아마 누나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저 침이 꽂힌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뭐가 웃긴지 키득거릴 뿐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 낯선 남자는 엄마의 허리에서, 우리의 얼굴에서 침을 뺀 뒤에 가져온 가방을 정리하고는 얼마가 들었는지 모를 돈 봉투를 받고서 사라졌다. 언제든 연락을 달라는 말과 함께.     


나는 나중에야 침 한 방에 얼마씩 계산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얼마라고 얘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오래 지나다 보니 기억이 잘......     


침을 맞으면 말도 안 되게 피부가 좋아질 거라는 그 말은 뻥으로 드러났다. 누나의 얼굴에 있던 여드름은 여전했고 오히려 그 주위에 여드름이 더 났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아프기만 했을 뿐 효과는 전혀 없었다.     




나중에 커서야 야매가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비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뒷거래로 제대로 된 교육과정을 거치지 못한 사람이 면허증 없이 하는 행위라는 것을.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오싹한 기분이 든다. 등 뒤에서 어물어물 배운 비전문가가 내 얼굴에다가 침을 놓았다는 것을 떠올리면 공포감마저 든다.    

 

싸다는 이유로, 없이 산다는 이유로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이 지금은 납득이 가지 않지만 당시에는 아주 흔한 일이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그런 일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겠지만.   

  

그런데 싼 것은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자기 사업장도 내지 못한 만큼 은밀하게 집으로 찾아와서 누가 볼까 봐 쉬쉬거리며 하는 의료행위에 자신의 몸과 건강을 맡기다니 그 얼마나 무모하면서 겁이 없는 행동인가?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아는 어떤 분도 틀니를 할 때 치과에서 하면 너무 비싸서 어찌어찌 물어 야매를 통해 틀니를 맞추었다가 돈은 돈대로 들고 고생은 고생대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결국 나중에는 치과에 가서 다시 틀니를 맞추느라 돈도 곱절로 더 들고 고생도 더 많이 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사람들이 싸다는 말에, 반값이라는 말에 쉽게 현혹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싼 건 다 이유가 있을 텐데.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닌 사람에게 자신의 건강을 맡길 생각을 하다니.     


몇 년 전 누나가 눈썹 문신을 했는데 집에 사람을 불러서 했다는 말에 다시금 경악을 했다. 그 동네에서 나름 유명하다는 사람에게 했다는 누나는 겨우 눈썹 문신 가지고 뭘 그리 놀라냐, 며 오히려 나를 유난스럽다는 듯이 얘기했다.

그러다가 잘 못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라는 말에 베테랑이야, 여기서 아주 유명해, 그럴 일이 없다니깐 그러네,라고 말하는 누나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직도 야매는 우리 주위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전문의를 찾아가서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으면 되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싸니깐 그렇지, 라는 그 한 마디면 모든 게 다 통한다고 생각되는지 오늘도 그 말을 듣는다.      


병원에 가는 것에 비하면 반값도 안 해, 그리고 여러 사람 같이 하면 더 싸게도 해준다니깐.    

  

자신의 몸과 건강이 관련이 된 것이니 만큼 제발 신중하게 결정을 했으면 좋겠다. 나중에 비싼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것을 제발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야매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그냥 전문의 자격증을 딴 동네 병원 의사에게 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추억의 음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