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자작가 JaJaKa
Dec 05. 2022
(이 글은 아내의 관점에서 자작가인 제가 써본 글입니다)
가끔 내 남편이 근사해 보일 때가 있어요.
한쪽 다리를 꼬고 소파에 앉아 책을 읽을 때에요.
햇살이 커튼 사이로 거실을 비추는데
한 남자가 긴 손가락으로 천천히 책장을 넘기며 조용히 책을 읽고 있어요.
저는 그 모습이 너무 근사하게 보여 잠시 바라보아요.
그는 제가 보고 있는 것도 모르는지 책에만 시선을 고정해 두고 있어요.
그는 그런 사람이에요.
어떤 일을 할 때 보면 다른 것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책을 읽을 때처럼.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하다가 그의 시간을 방해하는 것 같아 그가 머리를 들고 잠시 쉴 때까지 기다리기도 해요.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저 자세,
처음 만날 때처럼 갑자기 가슴이 설레네요.
처음 만날 때만 해도 그는 호리호리한 사람이었어요.
저는 날씬한 남자를 좋아했거든요.
그가 내 눈에 딱 띄었을 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는 것을 어쩌지 못했어요.
내 마음을 들킬까 봐 은밀히 숨겼지요.
책을 읽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옛 생각이 나는 것이 저도 나이가 들었나 보네요.
어떻게 저렇게 선이 고울 수가 있죠.
그냥 책을 읽고 있을 뿐인데.
이럴 때는 순간순간 모습이 참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는 해요.
욱했다가 유머스러웠다가 토라졌다가 찡찡거리다가 날 웃게 만들어주다가
가끔 필이 받으면 혼자 춤을 추는데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얼마나 배꼽을 잡고 웃는지...
그러다가 저렇게 근사한 모습을 보여주지요.
그가 이제 잠시 쉬려는지 고개를 들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하네요.
눈이 피곤한가 봐요.
눈 마사지 기계도 샀는데 깜빡하는지 잘 이용을 안 하네요.
뭐라고 한 마디를 해야 하나 참...
무슨 책을 읽나 슬쩍 제목을 봐요.
그는 자기만의 스타일이 확실한 사람이라 옷을 살 때도 책을 읽을 때도 다른 사람이 뭐라 하건 자기만의 원칙이 있는 것 같아요.
나한테 나중에 추천을 해 줄 거냐고 물으니,
그가 글쎄 좀 더 읽어봐야겠는데, 라며 말끝을 흐리는 것을 보니
아직까지는 확실하지 않은가 봐요.
내가 읽는 책들 중 상당수가 남편이 먼저 읽고 추천해 준 책들이에요.
남편이 추천해 준 책들은 대부분 읽고 나서 실패를 하는 일이 거의 없어 저는 마음에 들어요.
그가 커피를 마시자고 하네요.
꼬고 앉은 다리를 펴고 일어나는데 츄리닝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나 싶은 게 내 남편이 맞네요.
커피 물을 올리고 과자가 쌓여 있는 수납장을 열어 고민하는 그의 뒷모습을 봅니다.
어떤 과자를 꺼낼까 심사숙고를 하네요.
그가 결정을 했나 봅니다.
손을 뻗어 무언가를 집은 그가 돌아서서 저를 향해 과자 봉지를 내밉니다.
오늘은 커피에다가 이걸 곁들일까 봐.
다는 말하지 않을래요.
저만 알고 있을 거예요.
근사한 내 남편의 다른 모습들은.
어쩌면 2편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후훗~
2년 전 아내의 시선으로 자작가인 제가 쓴 글이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