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5-043
1
인터넷 쇼핑을 좋아한다. 주로 책과 소품을 웹에서 주문하곤 한다.
웹 쇼핑으로 신발도 사봤고 액세서리와 보석도 사봤다. 움직일 필요 없이 의자에 앉아 마우스만 까닥이다가 상세정보를 클릭해보고, 마음에 들면 클릭해서 장바구니에 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상품을 구경하고... 온라인상의 쇼핑은 3시간을 해도 그다지 피곤하지 않다.(목과 눈이 좀 힘들기는 하다)
여하튼 인터넷 쇼핑으로 사지 못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내가 범접하지 못하는 쇼핑 영역이 있었으니 그것은 '옷', 의류였다.
2
옷 보는 안목이 없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내 몸에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게 어려웠다.
몸이 '삐꾸' 인가 의심될 정도로 잘 맞는 옷을 고르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옷 쇼핑은 잘 안 했다. 입어보고 안 어울리면 내 체형 탓인 것 같아서 속이 상하고 말았으니까 말이다.
문득, 거지같이 보이는 미운 옷이나, 여왕같이 보이는 예쁜 옷을 사는 것도 사실 고르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패셔니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옷을, 이 옷, 저 옷 많이 매치하며 미리 입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패셔니스타가 될 생각은 없지만, 될 수도 없는 까닭은 옷을 사는 걸 겁내서 옷이 몇 벌 없다는 게 이유이지 싶었다. 어느 정도 옷이 있어야 미리 매치라는 것도 해보는 것일 테니까.
그래서 이번에 아주 중대한(?)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겼다.
3
온라인 쇼핑, 더 구체적으로 말해, 온라인 의류 쇼핑을 시작한 것이다.
내 일생에 처음으로 온라인 옷 쇼핑을 했다.
'옷은 입어보고 사는 것'이라는 말은 잊기로 했다.
오로지 디자인, 색상, 사이즈만 보고 어울리겠다 싶은 옷은 죄다 장바구니에 넣었고, 그렇게 마음먹고 만 하루를 꼬박 옷 쇼핑을 한 결과 최종 8벌의 옷을 구매했다.
4
얼마 뒤 옷은 도착했고 8벌 중 2벌은 실패했다. 실패한 두 벌은 깔끔하게 다른 사람 줘버렸다.
구입한 옷 중에 치마가 있었는데 길이를 좀 줄여야 했다. 그건 감안했던 상황이라 당황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옷이 싸면 뭐 하니? 수선비가 5천 원이나 나오는데."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계산법은 '옷값 대비 수선비 5천 원이나 들면 전체적으로 싼 게 아니다.'라는 의견이셨고, 나의 계산법은 '옷이 싸니까 5천 원을 더해도 여전히 싼 거다.'라는 주장이었다.
어머니는 못마땅해 하시면서도 치마에 수선할 길이를 핀으로 표시하여 꽂아주셨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손수 옷을 들고 수선집에 가실 채비를 하셨다.
5
나는 봉지 하나를 찾아서 무심히 치마를 넣어놓았는데 어머니가 들고나가실 때 보니까 모서점에서 책 살 때 담아온 것으로 알베르 카뮈의 초상이 그려진 비닐봉지였다.
어머니와 카뮈가 함께 나가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좀 이상했다.
져니를 위해 어머니와 카뮈가 한마음 한뜻으로 패셔니스타가 되라고 도와주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그래, 나 망상 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더 말하자면, 장차(?) 문학계의 별이 될(?) 져니를 위해서 어머니와 문학 선배가 '옷 잘 입어서 멋져지면 좋지! 파이팅!'이라고 말하는 느낌이랄까, 아주 기분이 이상하면서 흐뭇했다.
6
내가 옷을 잘 입고 싶어서 쇼핑을 했다는 사실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
세상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쁘려고 치마, 바지, 블라우스에 모자, 신발까지 각양각색의 치장꺼리를 구입한다. 나는 이제서야 발을 들여놓은 입문자이자 후발주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저런 엉뚱한 상상을 한 것은 내 입장이 있기 때문이다.
7
가끔 내가 구입한 옷을 보신 어머니는 핀잔을 주셨고, 거기에 정 사이즈 옷이 잘 맞지 않았고, 그래서 내 몸에 맞는 옷을 고르는데 자신을 잃었고, 거기에 사람은 내면이 중요하다는 말을 너무 믿어서 치장에 관심이 없었고....
아... 인생사를 다 말하자면 길다. 어쨌든 주눅에 시달리고 자신감이 없었다.
8
그냥 평범하게 입고 다녔을 뿐이다. 어느 순간, 아름답게 입는 사람들에게 눈길이 간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그렇게 멋지게 입을 깜냥도 없었고, 그렇게 멋지게 입지 않아도 사람들은 내면이 예쁜 나를 좋아해 준다고 믿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내면도 별로 안 예뻤는데, 자신감은 없으면서 또 그런 거엔 자신감을 갖다니... 나도 참 어이없는 사람이었다.
9
인터넷 옷 쇼핑을 시작한 역사적인 날에 나는 반신반의했다.
나는 변하고 있는 걸까?
10
모든 것을 집안에서 조물딱 거리며 은둔하다시피 했다.
예전에는 배우고 싶은 것이 있어도 낯선 사람이랑 한자리에 있어야 하는 게 꺼려져서 수강신청도 못했다. 그러던 내가 수시로 뭘 배우러 나가고 있고, 그리고 드디어 아름답게 입는 사람들을 닮고 싶어서 옷 쇼핑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는 변하고 있는 것 같다.
11
이런 나를, 어머니가 옷 수선을 맡겨주시는 마음씀으로 도와주시고 카뮈 선배가 옷을 보듬어 옮겨주며 응원해주었다.
이런 나의 입장... 이렇게 생각하는 나의 입장... 이해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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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도조차 안 하면 불행해진다
-비벌리 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