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수업 3

시즌5-048

by 배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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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핸드 드립 강좌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수업 시작하기 전, 나는 아주 일찍 강의실에 도착하곤 했는데 그렇다 보니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반장님을 도와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2


선생님은 수업마다 각기 다른 원두를 준비해 오셨는데 마지막 수업이니만큼 좋은 커피를 가져오셨다.

내추럴 과정으로 생산한 원두가 오늘의 그것이었다.

내추럴 방식은 손이 많이 가는 대신 맛이 훌륭하다는 강의를 들었다. 그 강의를 들을 때 속으로 '그 좋은 원두를 수업용으로 가져오지는 않으시겠지.'라고 생각했다.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기대를 버렸다.


그런데! 콰콰광~(자체 효과음)

내추럴 과정으로 말린 원두를 가져오셨다.

반장님과 나는 수업 준비를 도왔다고 그 원두를 선생님께 한 봉지씩 받았다.

콰콰광~ (자체 효과음) 천둥 같은 감동이...



3


수업 중에 핸드드립 한 그 커피는 향기가 좋았다.

장금이 같은 미각은 없기에 그간 수업 중에 실습해 본 커피들은 대동소이 다 그 커피 같았지만, 이 커피는 맛도 좀 다르고 향기는 정말 꽃향기가 났다.

완전 기분이 좋더라. 그런데.....콰콰광~(자체 효과음)





4


수업이 끝나고 반장님을 도와 뒷정리를 하고 돌아오니 우리 둘의 가방 앞에 원두 한 봉지씩이 놓여있었다.

"아까 주셨는데..."

중얼거리다가, 선생님이 헛갈리셨나 싶어 바라봤다.

"그간 수업 준비 도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한 봉지씩 더 가져가세요. 좋은 커피니까 좋은 분들이랑 드세요."


콰콰콰콰광~





5


첫 강의 시간에, 선생님은 좋은 원두커피의 맛을 보면 믹스 커피나 캔커피나 프렌차이저 커피숍의 커피는 못 마시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시중의 0000나 000 같은 곳의 커피, 그런 쓰레기는 마시지 마십시오"


처음엔 말씀이 좀 심하시다고 생각했는데 강의를 듣다 보니 시중의 프렌차이저 숍의 커피 품질에 대한 이해도가 생겼고 그러고 나니 선생님의 말씀이 과하지 않은 것도 같았다.

게다가 너무나 자신 있게 "그런 쓰레기"라고 하시니까 웃음이 나왔다.

분명 나쁜 욕인데, 밑도 끝도 없는 욕이 아니라 소신이 담긴 욕이라서, 또 커피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하는 욕이라서, 진심으로 진짜 욕하시는데 거기에 신뢰가 가서 웃음이 났다.





6


원래 나는 믹스 커피를 너무 좋아했다. 달달하고 고소하고 진해서.

믹스 커피, 캔 커피가 이 정도로 맛있다면, 원두커피는 더 맛있다던데 얼마나 맛있는 거야?, 어디 한 번 알아볼까?, 하는 마음에서 수강을 했고, 결국 그 때문에 나는 지금 돈 걱정을 한다.


이제, 이런저런 곳에서 믹스커피나 캔커피를 마시면.... 싱겁다.

예전엔 정말 맛있었는데 이젠 싱거워서 물 같다.

맛이 없어졌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한때 열렬히 좋아했으니까.

그런데... 싱거워서 맛이 없는 것 같다.

(아 결국 맛없는 건가?)


결국 나는 원두 구입비를 책정해야 할 것 같다.

긴축 재정 상태여서 원두 구입비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이제는 핸드드립 하여 원하는 농도만큼의 진한 아메리카노를 가지고 다니며 마실 수 있다는 것은 만족스럽다. 게다가 품질과 맛을 생각할 때 이건 소모 식품이 아니라 원기 보충 식품 같다는 느낌도 든다.


또한, 그전에 캔커피나 믹스커피는 지출 기록계에 식음료비 목록에 넣었는데 앞으로 원두를 사게 된다면 그건 문화비 목록에 기록해야 할 것 같다.

배고파서, 목말라서 먹는 게 아니라, 향과 맛이라는 문화적인 향취를 느끼는 것이니까.






7


선생님이 주신 원두 두 봉지를 가방에 넣고 집에 가는데 신이 났다.

가는 도중 지갑을 꺼내기 위해 가방을 열었는데 커피 향이 진하게 났다. 더 신이 났다.

이 문화적인 원기 보충제를 어무니도 드리고 아부지도 드리고, 우리 오라버니에게도 드리고 나도 한 잔 들이켜고... 아... 그냥 막 신이 난다.





8


나는 커피가 좋고, 이제는 원두커피가 좋아졌고, 내추럴 생산한 커피를 처음 마셔봤고, 그 맛있는 커피가 지금 두 봉지가 있고, 커피는 마시는 음료이기보다 취하는 문화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원두 구입비를 따로 빼놓는 데에 (살짝 갈등했지만 무사히) 성공했다.





9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겨울에 만나서 봄 지나고 여름까지 만났네요.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3월에 시작해서 6월에 끝났다.


4개월 동안 배우고 실습하고 맛보면서 커피 무식자에서 벗어났다.

이제는 커피 향유자로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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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은 향기이다.

집 근처에서 커피콩을 볶을 때면,

나는 서둘러 창문을 열어

그 향기를 모두 받아들인다.


-장 자크 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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