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병은 예뻤다

시즌5-059

by 배져니
20180917-발 사본.jpg





1


같은 수업을 듣는 선생님 한 분이 내게 자료를 주셨다.

책의 내용을 깔끔하게 스캔해서, 혹은 엑셀 자료로 만든 후 jpg 파일로 변환한 자료들을 7개의 폴더에 깔끔하게 분류, 정리해놓은 자료였다. 이 선생님은 스마트폰용 usb(정확한 명칭은 모르겠는데 어쨌든)를 가지고 다니시더라. 그것 안의 자료를 내 폰에 연결해 담아주셨다.

강의 내용은 어쨌거나 외워둬야 할 것이 수두룩했고, 그러려고 갖고 다니면서 볼 수 있는 책자도 따로 구입했었다. 작은 책자였지만 어쨌든 갖고 다니는 게 번거로워서 번번이 놔두고 다녔고 그래서 구입한 보람도 없이, 마치 소장용인 양 책장에 비치되고 있는 형국이었다.

선생님이 주신 자료는 무게도, 부피도, 챙기는 주의력도 필요하지 않았다. 폰 하나에 다 들어있으니까 생각나면 그냥 폰을 들고 보면 되었다.




2


이 자료를 다 정리하고 만드는데 얼마만큼의 노력이 드셨을까?

그러고 보니 직접 만든 것인지를 여쭤보지 못했는데, 아무튼 자료를 만든 분은 대단하시고, 이렇게 나눔 하시는 선생님도 고마웁다. (만들고 나눔 하신 것이라면 더더욱 훌륭!!)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

가볍게 성의 표시를 해야겠는데 뭘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음료수 한 병 사드리기로 했다.




3


아사히 500ml 한 캔을 사다 드려? 아니야, 면학 분위기에 맥주라니, 안될 말이지.

그럼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사다 드려? 아니야, 커피 종류가 다양한데 뭘 좋아하실지 모르잖아.

아메리카노가 무난할 텐데, 그럼 차라리 내가 핸드드립 해서 직접 만들어 담아드릴까?

아니야, 건강 생각해서 커피 안 드시는 사람도 꽤 있으시더라.

아우, 몰라. 편의점에서 괜찮은 걸로 하나 사 가지, 뭐. 성의 표시잖아.




4


수업 가기 전에 편의점을 들렀다. 내 눈에 가장 예쁜 걸 골랐다.

망고 베이스 음료에 바질 씨앗이 든 건데 사실 예쁘긴 했지만 망설여졌다.

왜냐고? 나도 안 먹어 본 것이었으니까.

편의점 직원에게 "이건 맛이 보편적인 가요? 독특한가요?"라고 물었다.

"특이하진 않아요."

그 말에 샀다.

너무 특이하면 입맛에 안 맞을 가능성이 크니까.




5


예전 친구가 'ㅇ의 눈'이라는 음료를 추천한 적이 있다.

솔향이 나고 맛이 독특한데 좋다고 먹어보라고 내게 권했었다.

그래서 한 번 사 먹어봤다.

호불호가 갈리는 맛이었다. 나는 불호였다.

문득 친구의 건강을 걱정했다.

이게 맛있으면 뭔가가 잘 못된 거 아닌가? 미각을 잃었나?

마시면서 내 콧잔등이 찌푸려지자 친구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어.. 정말 괜찮은데... 마시다 보면 괜찮을걸. 더 마셔보.. ㅏ... 긴 싫지?"

라며 권하다가 내 표정보고 급 전환하더라.

그래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요즘 그 음료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만약 보이면 다시 한번 마셔볼 의향이 있다.

그때보다 미각의 범위가 넓어졌으니 어쩌면 지금은 맛이 괜찮다고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6


자료 주신 선생님께 좋은 음료수를 드리고 싶었다.

근데 내가 마시는 음료들은 너무 뻔한 맛이라서 드리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모르는 맛의 음료수라면, 차라리 겉모양으로라도 있어 보이는 것을 드린다면, 어쨌든 먹으라고 나온 거니까 독약을 넣어 나온 음료수들은 아닐 테니까, 그러니까 예쁜 걸 드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골랐고 드렸다.

병이 예뻐서 드릴 때는 당당하게 드렸는데 맛은 장담할 수가 없어

"지금 드시기보다, 집에 가셔서 냉장고에 넣어두신 뒤에 시원하게 해서 드세요."

라고, 뭔가 맛있게 마실 수 있는 팁인 양 말씀드리고 내 자리로 도망갔다.

사실 맛을 장담할 수 없었기에... 집에 가서 드시라고.... 말하는 나의 어두운 권유...... ( 나, 나빴쪄?)




7


다음 수업은 3주 후에나 갈 수 있다.

그 선생님도 3주 후에나 뵙게 된다는 뜻이다.

맛이 훌륭했어도 혹은 맛이 거지 같았어도 3 주면 잊히지 않을까?

어쨌거나 음료수 유리병은 예뻤다니깐.




-----------------------------------------------------------------



인생은 하나의 실험이다. 실험이 많아질수록 당신은 더 좋은 사람이 된다.


- 에머슨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두 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