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5-060
1
언니가 아버지께 지갑을 구입해서 드렸다.
아버지 지갑을 볼 일이 없어서, 쓰던 좋은 지갑 잘 사용하고 계시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새 지갑이 생겼으니, 쓰던 지갑이 낡지 않았어도 바꾸실만하지 않겠나,라고도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께 쓰시던 지갑 가져오시라고 하고는 새 지갑의 케이스를 열어 아버지의 현금과 카드를 옮겨 넣을 준비를 했다.
아버지는 곧 지갑을 가져오셨다. 좀 놀랐다. 지갑이 많이 낡아있었다. 모서리 부분이 군데군데 헤져서 펼치면 구멍이 보일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이렇게 낡았는데 왜 새 지갑으로 당장 바꾸지 않으셨나?
2
이건 아버지의 습관이 이유이지 싶었다.
아버지는 소지품을 낡아서 떨어져 버릴 때까지 사용하신다.
예전 어느 날 내가 보고 있자니 좀 낡고 수명도 다 되어 보여서 아버지께 새 전기면도기를 선물해드렸다. 최신형은 아니었고 최신형 비스무레한 것을 사다 드렸다. 자금 사정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좀 죄송하더라.
근데 아버지가 새 면도기를 당최 사용하시지 않는 것이었다. 이제나저제나 사용하시려나 숨죽여 지켜보았지만 여전하셨다. 나는 속으로 '최신형이 아니어서 아버지가 토라지셨나?' 생각하며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우리 아버지, 그렇게 명품, 최신형, 새것, 이런 거에 예민하신 분이 아니신데 왜 이러실까, 섭섭하기도 했다.
3년 후쯤 쓰시던 면도기가 '다이' 하고 나서야 그제서야 '원래 최신형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구형이 되어버린' 면도기를 사용하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다이'한 면도기는 아버지의 공간에 1대, 2대 면도기와 함께 나란히 누워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습관은 '쓸 수 있을 때까지, 떨어질 때까지, 고장 날 때까지, 사용한다.'이며 더불어 '다 쓴 물건은 버리지 않는다. 모아둔다.'이시다.
마지막의 모아두시는 이 습관은 어머니가 정말 싫어하시는데 대책이 없으셨나 보다. 여전히 아버지 공간에 헌 물건이 차곡 쌓이고 있다.
3
새 지갑은 얇고 가벼웠고 예뻤다.
아버지는 작아서 더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실 거면 진즉에 교체하시지, 내가 내용물 옮기자고 제안할 때까지 가만히 계시는 것은 뭔지.
하지만 알 것 같다. 당신의 물건에 애착이 강하셔서 단박에 바꾸지 못하시는 것이다. 재촉하니까 못 이기는 척 교체하신 게 거의 확실하다.
4
어머니가 싫어하실 장면을 봤다. 아버지는 새 지갑이 포장되어있던 상자에 헌 지갑을 얌전히 넣으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공간에 갖다 놓으셨다.
나는 평화주의자. 어머니에겐 그 사실을 함구해야겠다.
5
언니가 센스가 있는 것 같다.
필요하고 좋아할 만한 선물이 뭔지를 아신다.
나도 언니가 내게 준 선물이 마음에 든다.
감사의 인사를 오빠가 대신 전해주기로 했는데, 잘 전했는지 모르겠다.
6
아버지, 헌 지갑 버리세요.
어머니, 쌓아둔 거 보시더라도 참으세요.
언니, 안목과 센스가 좋으세요.
오빠, 여자 보는 눈이 훌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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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알려면, 그의 지갑, 쾌락, 그리고 불평을 보라.
-탈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