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한 때

시즌5-061

by 배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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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머니는 백화점 남성복 매장에서 양복을 살펴보셨다.

아버지가 입으시기에 좋을 만한 양복을 발견하시고는 내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여기로 오시라고 해라. 입어보고 골라야 하니까."


나는 어디에 계신지 모르는 아버지께 오셔주십사 전화를 드렸고 아버지는 약 30분 만에 백화점에 도착하셨다.





2


매장에서 이런저런 양복을 입어보시고 아버지는 네이비색의 양복을 낙점하셨다.

바지 길이를 수선해야 했고 매장 직원은 말했다.


"수선하려면 좀 기다리셔야 합니다. 약 30분쯤 걸릴 거예요. 왜냐하면 수선소에 가져가서 맡긴 후에...."


아버지가 말허리를 끊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가오. 얼른 가서 맡기시오."


매장 직원이 미소를 거두지 않고 말했다.


"예. 빨리 맡겨도 한 30분쯤은 걸린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비행기 타야 한다고, 비행기 지금 뜬다고 하시오."


그 말에 매장 직원들이 와락 웃었다. 당연히 공항 근처도 아니고, 캐리어를 끌고 온 것도 아니고, 그냥 농담이지만 그만큼 빨리 해달라는 요청임을 다 아니까 말이다.

뭔가 분위기가 화기애애 해지면서 직원분들이 우리 아버지를 "유쾌한 고객'으로 인식하신 듯, 화사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하시더라.




3


뒤늦게 쇼핑에 참여한 아버지께, 어머니와 나는 한참 쇼핑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걸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평소에는 거의 절대 쇼핑을 같이 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나로서는 이렇게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쇼핑하면서 수다를 떠는 광경이 너무 생소했다. 동시에 너무나 가족적이고 화목한 모습이어서 슬그머니 행복했다.




4


이날은 너무 기분이 좋아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폭발적으로 유쾌해서가 아니라 잔잔하게 모든 것이 기뻤다.

건강한 부모님, 쇼핑할 수 있는 여유, 구입한 물건, 아기자기하게 일어났던 사건들, 이날은 그냥 평온, 안온, 화평한 날이었다.

아, 오빠도 같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오빠는 바빠서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쇼핑의 목적이 오빠의 날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마음으로는 함께였다고 생각한다.




5


가을이다. 선선해지는 날씨를 견디라고 마음 기쁜 일이 많이 생기나 보다.

마음에 온기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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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

남을 대할 때에는 봄바람처럼 너그럽게 하고

자기 자신을 지키기는 가을 서리처럼 엄하게 하라.


-채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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