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5-069
1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셨다.
"져니네 집이죠? 어머니, 져니가 다쳤어요. 져니 바꿔드릴게요."
어머니는 순간 놀라셨다가 보이스 피싱임을 직감하셨다.
"떽!"
크게 꾸짖듯 소리치니까 저쪽에서 당황했는지 전화를 끊더란다.
몹쓸 놈. 어머니가 굉장히 큰 소리로 '떽'을 외치셨다고 하셨으니까, 누군지 모르겠지만 고막이 성치 않았을 것이다. 고소하다.
2
얼마 전 김장 날에 김장을 하고 저녁에 수육과 김치에 와인을 곁들여 마셨다.
수육과 김치와 와인이 얼핏 안 어울리는 맛일 것 같았으나 실제로는 상당히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수육, 김치엔 막걸리가 제격일 것 같단 말이지.
냉장고에 막걸리 한 병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술맛이 다 거기서 거기, 맛으로 먹기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맛으로 마셨었다. 잘 마시기는 했지만 따로 홀로 술을 찾지는 않았다.
근데 이제는 뭔가, 더울 땐 맥주, 비 올 땐 소주, 출출할 땐 막걸리, 힘들 땐 와인, 피곤할 땐 양주 등, 뭔가 상황별, 종류별로 선택하게 되고 또 혼자서 더 잘 먹는다.
알코올 맛 말고 술마다 다른 맛들이 구분 가능해졌고 그 때문에 사람마다 주종 취향이 다를 수밖에 없겠구나,를 이해하게 되었달까.
수육과 와인을 마시던 날, 몸이 으슬으슬한 게 감기가 올 증상이었다. 별생각 없이 와인 한 잔을 비우고 침대에 가서 바로 잠에 빠졌는데 다음날, 몸이 개운했다.
와인에 감기 예방 효능이 있던가? 힘들 때뿐 아니라 아플 때도 와인이구만.
갑자기 와인이 확 좋아졌다.
3
그런가 하면 술맛뿐 아니라 원두커피 맛도 구분이 약간 가능해졌다.
커피는 재스민 향, 아몬드 향, 파인애플의 단맛, 청사과의 신맛, 건자두의 달콤한 맛 등등 가지각색의 풍미를 가지고 있다. 수도 없이 많은 풍미를 분별하지는 못한다. 모르겠다는 게 더 솔직한 말이겠다.
그저 두 컵의 커피가 동일한 것인지 다른 것인지 정도를 구분하는 정도이다.
처음엔 이게 왜 다른 커피냐, 똑같은데, 몰래카메라냐, 혼자 구시렁거렸는데 확실히 이제는 차이점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마셔서 느끼는 그 맛이 무슨 향, 어떤 맛인지 정말이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거의 다 모른다.
그냥 요거, 저거가 좀 다른 것 같다,를 알아차리는 정도이다.
이걸 자랑하고 싶었다.
처음엔 커피 무식자였는데 이 정도가 어디냐, 하는 마음.
4
술맛도 구별하고 커피 맛도 구별하고, 이제는 훌륭한 사람이 다 되었구나.
(응? 뭐가? 맛 구별과 훌륭한 사람이 무슨 연관성?)
기특하구나, 네가 옛날에 태어났으면 장금이었으련만.
(응? 나는 요리 못하는데?)
좀 더 분발해서 스스로의 인생 맛도 구별하고 정의해보렴.
(... 그건 맡겨 둬. 내 인생은 잘 요리해서 맛있게 맛볼게.
나도 내 인생이니까 열심히 살고 싶고.... 또 너한테만 말하는데.. 사실...)
아.. 어지러워. 나 술 먹었다.
(.... 야.... 이게...... 지금 술 주정이냣!)
5
현재 술은 안 먹었다.
하지만 냉장고의 막걸리를 마실 생각이다.
그럼 술 마시러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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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생이란, 건강과 재산
그리고 차와 커피를 마시는 인생입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믿습니다.
-조너선 스위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