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5-070
1
작은 규모의 시험을 하나 치렀다.
시험을 치른 후, 나에게 합격은 문제가 아니었다.
난도가 심하지 않은 시험이라 합격은 무난했고 점수를 몇 점 맞느냐가 나의 관심사였다.
공부를 제법 했다고 생각해서 당돌하게도 만점을 노렸지만 너무 자신만만한 게 밉상이었는지 신이 만점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만족할만한 점수여서 부모님에게 면은 섰다.
2
시험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날 이것저것 물으시는 부모님께 "만점 받을 거 같아요."라고 넉살 좋게 말했다.
사실 그때에도 만점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나 그냥 약간의 허세를 부리고 싶은 마음에 그리 말했고, 부모님은 내 과장된 억양에서 농담임을 확실히 알았지만 그리 말하는 것에는 합격을 확신해서라는 것을 느끼셨기 때문에, 놀리면서 웃으셨다.
"진짜인지 발표날 함 보자."
3
그 공부를 하는 것을 부모님은 그리 탐탁해하지 않으셨다.
쏠쏠히 재료값이 들기 때문에, 은근히 목돈이 나가기 때문에, 그럼에도 당장에 효용이 느껴지지 않으셔서, 보시기에 허튼 데에 비용을 치른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4
그러고 보니, 핸드드립도, 심리학도, 철학도, 옷 만들기 일도, 수채화도, 딱히 필요한 것들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내가 너무 사방팔방에 관심을 갖는다고, 그것도 '쌩 쓰잘떼기' 없는 데에 뛰어든다고 걱정이시다.
5
"다 사색하고 글 쓰는 데에 도움이 된다니깐요. 내가 이 모든 걸 다 머릿속에서 재정리, 재구성하고 있어요. 언젠간 다 써먹을 거라고요."
그렇게 말한 김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를 상상하시게끔 짧게 이런저런 일화를 들려드렸다.
아버지는 내 이야기가 그럴싸했어 보이고 내 언변에 홀리신 나머지 말없이 내 팔방의 관심사와 배우러 다니는 것을 더 이상 반대하지 않으셨다.....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진짜로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사방의 관심사를 즐기면서 갈피를 못 잡아 했다면 분명 한 번쯤 큰 소리를 내셨을 것이다.
탁월함도 재능도 별로 없는 딸이지만 끈기 하나는 있다고 생각하셔서 봐주고 계시는 것이다.
왜냐면 여러 군데 쫓아다녀도 그것들이 결국 글쓰기를 위한 것이라고 귀결하니 '애가 심지는 있군.'하고 판단하신 것이 분명하다.
6
지금 배우고 있는 것들을 부모님도 좋아하고 응원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안 좋아하셔서 아쉽다.
하지만 그래도 딸이 시험에 떨어지는 것은 싫으셨던 모양이시다.
만점 운운, 너스레를 떨며 합격을 확신시켜드리자 부모님은 너무나 밝고 맑은 아기 표정으로 웃으시더라.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 내가 효도했나? 왤케 좋아하시지?
7
배우고 익히는 게 즐겁다. 그렇게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도 앞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직분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 여정에서 부모님을 자주 아기 웃음 지으시게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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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정이 바로 보상이다.
-스티브 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