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한 이야기 17

시즌5-094

by 배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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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v 홈쇼핑에서 옷을 구입했다.

어머니가 보고 계시다가 나를 급히 부르시더니


"너 바지 없잖아. 저거 사자."


라고 하셨고 세 벌 한 세트로 파는 바지가 그럴싸해서 버튼을 눌러 주문했다.






2


이틀 뒤 바지가 도착했다.

그때 나는 잠들어 있었는데 어머니가 급히 깨우셨다.


"얼른 입어보고 기장 줄이자. 그래야 낼모레 나갈 때 입을 수 있잖아."


나는 비몽사몽간에 바지를 입고 벗었다. 어머니는 지켜보고 계시다가 단을 접어주시며 시침핀으로 줄일 기장을 표시하셨다.

나는 그때까지도 낼모레 내가 어떤 스케줄이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좀 더 자다가 일어나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이틀 뒤에 일정이 있긴 하더라. 나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그걸 기억하시는 어머니가 신기했다.




3



다음날 어머니는 투덜거리며 말씀하셨다.


"시장통 수선집 그 할아버지, 나를 보더니 '아직 안 했는데.. '라고 하더라. 내일 입고 나가야 해서 얼른 해달라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수선은 잘하는데 에이.. 앞으로는 거기다가 안 맡겨야겠어."


할아버지의 실력은 인정하는데 가격을 싸게 해주지도 일정을 맞춰주지도 않는 그분이 약간 못마땅하신 모양이었다.


"내일은 아무거나 입고 나가면 돼요. 근처 일정인데 멋낼 일도 아니고."





4


옷이 도착한지 열흘도 더 넘었으나 나는 새 바지를 입고 외출하지 못했다.

수선도 다 되었으나, 외출할 일이 없었다.

중간에 외출 일정이 있었던 날엔 비가 오니까 새 바지 입기가 아깝더라.

여하튼, 어머니가 득달같이 수선을 맡긴 바지는 주인을 찾아와 고이 옷장에 뉘어져 있다.




5


작년 겨울에 어머니는


"너, 트레이닝 복 없다고 운동 못하겠다며? 저거 사자."


라고 하시며 그 당시 홈쇼핑에서 나오던 트레이닝복 세트를 주문해주셨다.


"청바지 입고 뛰거나 산책하기도 좀 그렇고...."


라는 말을 하긴 했었다.

그 말이 그렇게 각색되어 기억하시는 줄은 몰랐다.




6




"잘 맞아서 예쁘다. 쓰겄다."


내 옷이라서 내가 더 좋아해야 하는데 어쩐지 어머니가 더 뿌듯해하시고 만족스러워하셔서 내 가슴이 뻐근했다.


어머니는 내가 트레이닝 복을 입고 열심히 운동하고, 외출 일정마다 흰 바지, 청바지 번갈아 입으며 멋내고 다니길 원하신 것 같다.


현재 트레이닝복 세트와 바지 세 벌은 고스란히 옷장에 쟁여져있다.


어머니,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죄송.






7


다음 외출 일정은 일주일 뒤.

트레이닝 복은 좀 더 잠들어 있어야 하니까 (기모라서) 놔두고, 바지 중 한 벌은 입고 외출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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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곧 어둡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곧 혼돈스럽다.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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