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국수 드시던 할머니

by 배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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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일정이 끝나고 다른 일정이 시작되기까지 시간이 남아서 홀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가격이 저렴하고 음식 맛이 좋은 음식점을 알고 있었다. 그곳은 싸고 맛있는 것으로 유명해서 이미 사람들로 빽빽했다. 한창 바쁜 점심시간이었기에 더욱 붐볐고 테이블이 꽉 찼다. 어쩌다 보니 내 앞에서 만석이 되어 나는 어정쩡하게 서서 기다려야 했다. 그때 누가 나를 보고 손짓을 한다.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식사를 하시던 할머니 한 분이 "여기 와서 앉아요."라고 하신다.

보아하니 할머니도 혼자 오셔서 식사를 하고 계셨던 터라 빈 좌석을 내게 허락하신 것이다.

나는 이 낯선 할머니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주문을 했다.

할머니는 후루룩 콩국수를 드시며 살갑게 질문을 하신다. "양재를 배워요?"

백팩에 넣은 그레이딩자가 삐죽 나와있었는데 어르신마다 이 자를 보면 단박에 '양재 배우나 봐요?'라고 물으시더라. 벌써 그렇게 알아차리신 분이 이 할머니까지 다섯 분쯤 되신다. 이 자가 그렇게 유명한 자였나? 아무튼 대답했다.


"네. 취미로 배우고 있어요."


"우리 딸도 옷 만드는데. 동대문에서 옷 만들어 파는 디자이너라우. 계절이 바뀌기 전부터 미리 디자인 뽑고 공장에 맡기고... 하여간 맨날 되게 바빠. 나 입으라고 옷을 갖다 주는데 너무 많아서 다 입지도 못해."


"우와, 좋으시겠어요~"


할머니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콩국수를 드시면서 아들이 교수이며 다들 잘 컸다시며 대놓고 자랑을 하시는데 그 모습이 귀여우셨다.

지금은 노인교실에서 글쓰기 공부를 하고 있으며 전에는 수채화를 배우셨다고 하신다. 남편이 일이 있어서 못 왔는데 원래는 매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신다는 자랑도 하신다.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도중에 내가 주문한 칼국수가 나왔다.

그녀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칼국수를 젓가락으로 한번 휘저었는데 마침 한참 말씀하시던 그분의 입에서 뭐가 튀어나와서 내 그릇 주변에 떨어졌다. 그릇 '앞'인지 아니면 그릇 '안'인지는 모르겠다. 낯선 이의 침 묻은 무엇인가가 내 그릇 안에 떨어졌다고 생각하면 좀 찜찜하다. 할머니는 깔끔하셨지만 여하튼 침은 좀 그랬다. 뭐,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냥 먹기 시작했다. 분명히 침은 그릇 앞에 떨어졌을 거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


먼저 드시고 계셨던 그녀는 진즉에 식사를 끝냈건만, 칼국수 먹고 있는 나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셨다. 속으로 나는 긴장되었다.


'왜 안 가시지? 나를 기다려주시는 건가? 어째서? 우리는 처음 만난 사이인데...'


가실 생각이 없으신 것 같았다. 가방을 챙기시는 기미가 없으셨다.

이야기는 줄줄 많이 흘러나오셨다.

노인 교실에서 책을 냈다는 말씀, 자신이 몇 살로 보이시냐고 물으시길래 나는 웃으며 가늠이 안된다고 대답했다. 정확한 말씀을 않았는데 80세가 넘는다고는 말하신다.

깔끔하게 입은 옷차림과 산뜻한 양산 등을 볼 때 스스로의 관리도 잘 하시는 것 같았고, 말씀하시는 어투도 또렷하시고, 이야기의 순서나 내용도 조리가 있으셨다. 명석하신 것 같았다. 그야말로 정정한 할머니셨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재미있어지건만 나는 점점 더 긴장되었다.


'이 할머님, 너무 배려심이 좋아서 혼자 먹는 내가 외로울까 봐 그러신 건가? 나, 혼자 밥 잘 먹는데...... 왜 안 가시지?'


마음이 급해져서 후루룩 정신없이 먹었다.


얼추 다 먹고 일어섰다. 할머니도 일어나셨다. 각자 계산을 하고 음식점 문 앞에 나와 인사를 했다.


"할머니 안녕히 가세요~. 글 잘 쓰세요~"


"그래요. 잘 지내요."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생판 모르는 남이었지만 무사히 함께 식사를 하고 별일없이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니 그제야 할머니가 고맙고 감사했다.


그날 저녁 집에 와서 어머니께 이 이야기를 하면서 할머니가 너무 친절하셔서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주셨다고, 하지만 좀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어머니는 무심히 "할머님이 외로우셨나?"라고 하셨는데 그때 내 머릿속에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내가 열심히 면발을 먹고 있을 때 할머니는 잠시 말을 멈추셨었다. 나는 입안의 면을 꿀꺽 삼키자마자 "그러셨으면 다음엔 잘 되었나요?"라고 말을 내뱉었고 그에 반박자 앞서 할머니께서 "아가씨.... 시간 있어요?"라고 하셨던 것 같다. 할머니의 '... 간 있어요?'와 나의 '그러셨으면.. 다'가 겹쳤었는데 내 말이 더 길었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이 묻혔다. 할머니는 잠깐 침묵하시더니 "응.. 잘 되었죠......."


그렇게 다른 이야기로 전환되어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시던 할머니.

처음 보는 연배 어린 여자에게 시간 있냐고 물을 일이 뭐가 있겠냐고, 시간이 몇 시냐고 물으셨던 게 아니었냐고, 나는 그리 생각했었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나니... 착각했던 그 말이 착각이 아니라 진짜 내게 시간이 있느냐고 물었던 것이 맞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외로우셨던 것은 아닐지 몰라도 어쩌면 대화의 상대가 필요하셨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분은 푸근하고 친절하셨지만,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 착각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시간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전날 밤을 새워서 피곤에 쪄들었고, 다음 일정을 몇 십분 앞에 두고 있었고.. 그리고 낯을 가려서.


할머니는 1주일에 한 번씩 그 음식점으로 콩국수를 드시러 오신다고 했다.

만약 다음에 그분을 다시 뵙게 된다면, 그땐 시간을 내 볼 의사가 있다.

한 번은 우연이지만 두 번째부터는 인연일 수도 있으니까.


짧은 만남에 인상깊던 할머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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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별이 하늘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에요.

별들은 저마다 신에 의하여 규정된 궤도에서 서로 만나고 또 헤어져야만 하는 존재예요.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전연 무모한 짓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에요.


-M.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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