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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Oct 17. 2020

아버지의 춤

시즌6-057





1


연휴 어느 날 아버지가 그러셨다.


"열흘 후에 무슨 날인지 아냐?"


"모르겠는데요?"


"잘 생각해 봐라."


"아!"


생각해 보니 내 생일이었다. 당장에 아버지께 여쭸다.


"나, 생일 선물로 뭐 해주실 거예요?"


좀 뻔뻔스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아버지가 먼저 생일 운운하신 걸로 보아선 생일 선물을 해주실 작정이신 것 같아서, 당당하게 물었던 것이다.


"뭐 갖고 싶냐?"


응? 뭐 갖고 싶냐고요? 막상 갖고 싶은 게 뭐가 있는지 떠오르는 게 없는데....

컴퓨터도 있고, 노트북도 있고, 패드도 있고, 휴대용 키보드도 있고, 미술도구도 거의 갖추고 있고, 커피 도구도 있고, 원두도 있고.... 

어...? 난 생각보다 부자네, 다 갖고 있잖아....


그래서 아버지께 요청했다.


"걸그룹 댄스 춰 주세요."


아버지가 침묵하셨다. 그 침묵의 의미를 알아차리려 노력했다.

아버지가 속으로 욕을 하고 계신 건지 갈등을 하고 계신 건지...


그 이후로 생일을 D-DAY로 하여 카운트다운을 해나가며 아버지께 압박을 가했다.


"아버지, 5일 남았어요. 춤 연습하고 계세요?"


"아버지 3일 전이예요. 잘 준비하고 계시죠?"


아버지는 아무 말씀 안 하셨다.


드디어  D-DAY!


"아버지, 댄스는?"


그리고 나는 볼 수 있었다, 아버지의 춤을.

어느 걸그룹의 춤이라고 할 수 없는 막춤을 아버지는 신나게 추셨다.

아버지의 춤을.... 그 몸부림을 보고 있자니 너무 웃음이 나와서 힘들었다. 

그래도 한때 '00장'을 하셨던 분인데 권위를 내려놓으시고 이토록 온몸으로 춤을 추시니 웃음이 나고, 귀여우시고 감사했다.





2


매번 생일이면 축하 메시지를 보내오던 친구가 웬일인지 이번에는 오전이 넘어가도록 메시지를 보내오지 않았다. 

'연애하느라 바쁜가?' 싶어서 이해하면서도 약간 섭섭하려 할 때 메시지가 왔다. 

케이크 선물 메시지와 함께 친절히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지 까지를 알려주는 문자였다.

젠장, 너무 친절하고 다정하잖아. 

어쩌면 좋아, 가스나, 고마워.





3


가족과 친구, 지인들의 축하를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어쩐지 나이가 들수록 축하받는 게 기쁜 것 같다.

설마 이게 나이 들었다는 증거는 아니겠지?

그냥,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살뜰히 살핌 당하는 게 좋은 것 같다.




4


어쨌거나 나이는 1살 더 먹었다.

더 성숙해지고 더 재미있게, 더 활기차게 살아야겠다.

내년에도 이토록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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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上天下唯我獨尊

천상천하유아독존



①이 세상(世上)에 나보다 존귀(尊貴)한 사람은 없다는 말

②또는, 자기(自己)만 잘 났다고 자부(自負)하는 독선적(獨善的)인 태도(態度)의 비유(比喩ㆍ譬喩)



제공처: ㈜오픈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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