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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Jan 09. 2021

둥둥

시즌6-069




1


"내일 내가 새송이 볶음 할게요. 내일 아침에 깨워주세요."


....라고 해놓고 밤중에 일어났다.


"내일 아침에 재료 사 와서 점심상을 제가 차릴게요."


....라고 해놓고 점심시간 지나서 일어났다.


"저녁 상을 차릴게요. 소스 만들었으니까요."


....라고 했으나 아버지께서 저녁 약속으로 출타하시므로 다음날 아침상을 차리라는 어머니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그래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국도 끓이고 반찬도 하고 밥도 하고... 하여튼 다 하자.'


....라고 마음먹었으나 오전 6시에 겨우 일어나 애초에 하기로 했던 새송이 볶음만 간신히 만들어냈다.


이거 며칠 동안 개봉 박두를 외쳤는데 까보니 별거 없더라, 하는 실망감에 젖으시면 어쩌지?

그러나 김 여사의 딸, 모전여전, 져니는 요리를 꽤 괜찮게 해냈다.


"맛있다. 맛있네."


아버지도 어머니도 만족해하셨다.

나는 순간 스스로 귀신이 된 줄 알았다.

내 발밑으로 땅이 안 느껴졌다. 둥둥 떠다니는 기분.







2



점심 식사를 할 때였다.

부모님은 평소처럼 밥을 그릇에 담았고 당신들의 밥을 제하고 나니 딸내미 져니의 밥이 없었다.

어머니 말씀하시길,


"닭갈비 맛 볶음밥인가 뭔가 있다며? 그거 데워 먹어라."


그랬다. 원래 어머니 드시라고 사놨는데 어머니는 안 드시고 져니가 하나 둘 꺼내 먹어서 동이 나고 있는 레토르트 볶음밥이 있었다.

져니는 프라이팬에 그 볶음밥을 데웠다.

설거지를 져니가 해야 하므로 최대한 그릇을 안 쓰려고 프라이팬 채로 놓고 먹으려는 직전이었다.

아버지께서 물으셨다.


"맛있냐?"


"저번엔 먹을만했는데, 글쎄요. 한 번 한술 드셔보세요."


그렇게 말하고 져니는 프라이팬을 아버지 쪽으로 우선 밀어드렸다.

아버지는 프라이팬의 지름을 수저로 훑어내렸다. 

그런 후 뜨시지 않고 다시 옆쪽에서 시작해서 프라이팬을 또 훑었다. 

모인 밥은 꾹꾹 눌러 뭉치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서너 번을 다시 반복, 거의 반 그릇의 밥을 뭉치기 시작하셨다. 

'내가 이만큼을 한 수저에 담아 가져가 먹으련다.'라는 의도를 주는 장난임을 알았다. 


져니는 재빨리 수저를, 아버지가 들고 계신 수저 위로 턱 가져가서 밥알을 긁어 떨어트렸다. 뭉친 밥 무더기도 흐트러뜨렸다.

보고 계시던 어머니도, 꾸러기처럼 장난치시는 아버지도 팍 웃으셨다.

아버지가 장난하신 건 알아차렸으나, 져니는 순간적으로 정색할 뻔했다.

다행히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쳐서 분위기가 되게 화목해졌다.


이번에도 발이 땅에 안 닿는 기분이었다. 둥둥





3


새해는 순조로이 시작되었고 져니의 뇌는 서서히 가동되고 있다.

보통은 한가윗날 하는 말이지만 오늘 사용해보고 싶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기분 둥둥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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