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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Jan 16. 2021

속눈썹에 수증기

시즌6-070






1


지난주에 외출할 일이 있었다. 

전날 저녁에 눈발이 쏟아지더니 아침이 되자 길에 눈이 수북하게 쌓였다.

땅이 얼었겠구나, 날이 춥겠구나 짐작을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발 디딜 때마다 혹여 넘어질까 조심스러웠고 마스크에서는 습기 찬 숨이 뿜어져 나왔다. 

마스크 코 옆부분으로 숨이 뿜어져서 나올 때마다 속눈썹에 수증기가 맺혀 내 시야 안에서는 영롱한 비눗방울 화면 효과가 나타났다. 

그 아롱다롱 신비로운 효과 덕에 누구든 내 앞을 지나가면 왕자, 공주처럼 보일 판이었다.





2


오랜만에, 하필이면 추위가 극성인 날에 외출을 감행했다. 

일을 다 보고 집에 돌아왔더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분명히 아픈 것은 맞는데 이게 코로나인지 독감인지, 아니면 약간의 몸살인지 가늠이 안되었다. 

내 그런 증상에 가족이 다 놀랐는데 내가 가장 놀랐던 것 같다. 스스로 말했다.


"자가 격리 들어갈게요."


그러나 이미 같이 식사하고 물건 주고받는 등 대면, 접촉은 다 했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냥 형식적인 말이 아닐수 없었다.

다음날 일어나서 부모님이 하신 첫 마디 말씀은


"머리 어떠냐?"


.. 이셨다. 아니겠지, 생각하시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걱정되셨던 모양이다.


"멀쩡해요."


안도하시는 부모님을 보고서야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3


코로나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새삼 그때 눈앞의 아롱다롱하던 세상이, 왕자, 공주로 가득하던 시야를 담았던 내 눈이, 살포시 등뒤에 서 계시던 신의 시선을 대신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안 그러고서야 범인들이 그처럼 예쁘고, 세상이 그처럼 포근해 보일수 있었을까.

이 위험한 팬데믹 시대에, 누가 걸린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대에, 온전하게 돌아다니다 귀가할수 있다는 것은, 너무 안전에 익숙해서 쉽사리 감사함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선물이다.





4


마니또 게임이라는 게 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면서 지정된 상대를 도와주고 선물을 주는, 비밀친구가 되는 게임이다.


어쩌나, 신이여. 당신이 내 마니또라는 걸 알아버렸지 뭐예요. 


아아.. 팬데믹 종식이 왔으면 조케따! 

아아.. "누가" 코로나 싹쓸이 안 해가나? 

"비밀 친구"가 있어서 코로나 19를 사그러뜨리면 조케따! 

아아.. "누가" 그렇게 해주려나?





5


날이 춥다.

모두들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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