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6-075
1
오빠와 나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오빠는 내가 아버지를 되게 많이 닮았다고 하는데 내 보기엔 오빠가 점점 더 아버지와 흡사해져 가는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따지고 보니 아버지 유전자가 우성형질인가 보다,라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2
물론 나는 어머니 뱃속에서 나왔기 때문에 어머니를 닮은 데가 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결혼 이후 살이 빠지셔서 처녀적의 통통한 얼굴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너는 얼굴형이 날 닮았어."라고 하시는데 내 눈을 씻고 봐도 마른 볼, 얇은 얼굴형의 어머니와 닮아 보이는 게 없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딸로서 아쉬운 마음이었다.
알뜰하고 요리 잘하고 세심하고 부지런하신 어머니를 나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니, 거기에 얼굴도 닮지 않았다니....
어쩐지 어머니의 얼굴을 닮지 않아서 나머지 장점까지도 내게 머무르지 않고 떠난 것 같았다.
3
연휴 어느 날, 어머니가 폰을 건네주며 물으셨다.
"누군지 알겠니?"
폰 화면에는 흑백 사진이 떠있었다. 작은 소녀와 좀 더 큰 아가씨가 서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은 30년은 족히 더 된 것으로 보였다.
사진을 보자마자 나는 단박에 좀 더 큰 아가씨에게 시선이 갔다.
아무리 봐도 낯이 익었다. 너무 낯이 익어서 내 얼굴같이 보였다.
하지만 30~40년 전에 나는 20살 아가씨가 아니었다.
"어머니인 거예요?"
"알아보겠니?"
"아뇨. 나랑 닮아서 엄마인가 싶었던 거예요. 내가 엄마를 많이 닮았네요. 딱 '나'네요!"
4
나는 신이 났다. 오빠에게 '내가 엄마 딸이지 뭐야.'라고 문자와 사진을 보내니 오빠는 시큰둥하게 '이모랑 엄마랑 얼마나 닮았는데.'라고 해서 내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혔다. (치.)
5
사진 속의 작은 소녀는 이모의 딸, 나에겐 이종사촌 언니였다.
이모님과 어머니가 나이 차이가 꽤 있으셔서 어머니 20살 때 조카인 사촌 언니는 10대였다.
그 언니가 사진 정리하다가 발견한 김에 어머니 사진을 보내주었나 보다.
참 즐거운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덕분에 내가 어머니의 유전형질을 받았다는 것, 얼굴이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곧 어머니의 장점인 알뜰함, 세심함도 내 안에 안착할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기분이 너무 좋다. 나는 아버지도 닮고 어머니도 닮았다.
만세! 그냥 만세! 만세! 만세!
6
그리고... 남는 건 사진뿐. 사진과 영상을 많이 찍어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