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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Mar 20. 2021

수채화와 시절

시즌6-079




1


예전에 구립 도서관 문화센터에서 성인 수채화반을 운영하고 있었다.

종이에 칠을 하는 종류의 그림은 그때 거기서 처음 배웠다.

그래픽으로 칠하는 것과 종이에 칠하는 것은 좀 달라서 신선한 느낌이었다.

탄력 있는 붓모가 머금은 물과 물감을 종이에 퍼뜨리면서 번져나가는 게 꽤 재미있고 즐거웠다.

빈말로 재미있다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아주 매우 즐겁게 배우고 있었다.

그 뒤 얼마 후, 사정이 생겨서 더 배우지 못하고 수강을 그만둬야 했다. 생각해보니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수채화를 그리지 않았다.




2


당시 수채화 배운다고 아르쉬지, 붓, 팔레트, 가방 등등 구색 맞춰서 다 사느라고 돈을 꽤나 썼다.

입시 미술만 돈이 많이 드는 줄 알았지, 취미 미술도 마찬가지인 줄은 몰랐지 뭔가.

어쨌든 그때 당시에는 곧 수채화를 다시 그릴 줄 알았고 마음은 늘 수채화를 품고 있었다. 반롤을 구입한 아르쉬지는 책장 위 공간에 놔뒀고 고개를 들기만 하면 눈에 들어와서 잊을 수도 없었다.




3


미련이 남아서 눈에 밟혔는지 나는 자꾸 웹 화방을 들락거렸다.

붓 하나, 고체 물감 하나, 수채색연필 한 세트, 수성 플러스펜 세트, 펜, 이젤 등등...

이것도 저것도 웹 장바구니에 넣어놨다가 오빠가 생일선물로 준 금일봉으로 요런 것들 구입하고, 

어린이날에는 또다른 재료를 구입해서 '내가 바로 어린이닷!'라고 천명하며 스스로에게 증정하고, 

여름엔 휴가가 따로 없으므로 한더위 속에 고생하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또 몇 개 사서 선사하고....

재료와 도구는 늘어가는데 그럼에도 그림을 그리게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도래했다.

유튜브에서 그림 관련 유튜버들을 발견했다. 

수채화를 가르쳐주는 영상이 수두룩했고 하나같이 수준급의 실력자들이 운영하며 노하우를 알려주었다. 

그 영상들만 보고 따라 해도 배울 수 있는 게 굉장히 많아 보였다.




4


시절이 좋다.

별다른 수강료를 내지 않아도 배우려고만 하면 요리, 수채화, 요가 영상 등등을 찾아내어 적용해 배울 수 있다.


나의 경우 수채화 기법 영상을 보면서 손이 움찔움찔했다.(내 손이 붓을 원하고 있음을 느낌).

1시간이 넘는 영상을, 손은 움찔움찔, 거북목 자세로 찐득한 집중력을 발휘하며 시청하는 나 자신을 느끼면서 

'곧 수채화를 그리겠구나.'하는 느낌이 왔다.

영상을 보면서 '저렇게 다시 시작해볼만하겠다'라고 새록 용기가 솟아나는 마음이었다.



5


본업은 제쳐두고 자꾸 그림에 마음이 쏠린다.

이럴 때는 미련이나 후회가 남지 않게 그림에 시간을 할애해봐야겠다.

어차피 그림을 평생 취미로 곁에 둘 것이면 한가한 요즘에 익혀 보는 게 합리적이리라.

여러 번 그리고 나면 반복, 지속하는 재미와 노련해지는 실력 등도 갖게 되겠지.

어쨌거나 내가 좋아하는 취미인데 홀대하지 말고 열심히 해봐야겠다.

아무튼 시절이 좋다.




6


정치, 코로나, 기후 변화.. 뭐, 나쁜 것도 많지만,

적어도 웹 안의 세상에서는 정말 무궁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이 시절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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