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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Feb 05. 2022

자잘스토리 7 - 010 - 보기 좋은 소일거리






1


어머니와 동대문 종합 시장에 갔다.

신관 4층 천 매장에 가자 어머니는 눈이 돌으(?)셨다.

천을 살펴보시고 어느 정도 마음에 드시면 모조리 구입하실 기색이셨다.




2


나는 28시간을 깨어있다가 외출한 상태.

피곤에 절어서 영혼이 몸에 겨우겨우 매달려 끌려다니는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그간 집에서 인터넷으로 원단 쇼핑하시며 불만족스러움이 크셨던 모양이다.

웹 쇼핑 당시에 "실제로 봐야 아는데 말이야...."라고 아쉬워하셨었다.

이날 직접 쇼핑을 하시게 되니, 천 하나하나를 손으로 만져보시고 질감과 색, 크기를 체크하시며 주인아저씨와 가격 흥정까지, 오프라인의 쇼핑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셨다. 결국 불과 20분 만에 원단을 3종류나 구입하시더니 "져니야, 이 원단을 더 사서 네 바지도 만들까? 아니면 다른 원단을 사서 너도 바지 하나 만들어 입을래?"라고 하셨다.

말씀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니 정말 흥이 나셔서 즐거워하시는 게 보였고 방관하면 2~3시간은 충분히 열광의 쇼핑 모드로 돌입하실 것 같았다.

어머니를 진정시켰다.


"다음 달에 여기 올 일이 또 있어요. 그러니 오늘은 그만 사세요."




3


눈꺼풀이 내려앉아 꿈벅꿈벅,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옷 갈아입고 잠들어버렸다.

새벽 2시쯤에 일어났는데 전등을 켜자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천을 봤다.

동대문 시장에서 어머니가 구입하신 옷감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들어서 탁 털어 펼쳤더니 바지가 되어나타났다.

내가 잠든 사이 어머니는 재봉틀을 돌리셔서 내 파자마 바지를 만드신 것이다.


그 다음날에 어머니는 바쁘셨다. 작업실에 들어가셔서 옷본을 그리시고 재단, 재봉하고 지퍼 달고 단 정리, 실밥 제거까지 다 하시더니 당신의 외출복 바지를 떡하니 만들어 내셨다.

그 옷에 코트를 배치해 입고 옷 태를 살펴보시며 만족스러워하시는 어머니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옷감을 더 구입하시게 내버려 둘걸 그랬나 보다. 저렇게 만들어 입으시며 좋아하시는 데 말이다.




4


어머니가 여전히 재단, 재봉을 하실 수 있는 시력과 체력과 집중력이 있으셔서 마음이 좋다.

건강한 소일거리를 가지고 계시니 그 또한 보기 좋고 말이다.


다음 달 동대문에 갈 일이 생길 것 같다.

다음 달쯤이면 치료받는 어머니의 발도 완치되실 듯하다.

그땐 모시고 가서 3시간이 걸릴지라도 뒤따라 다니며 기꺼이 어머니의 짐꾼이 되어드려야겠다.

참, 파자마 바지가 두어 벌 더 있었으면 좋겠더라. 내 취향의 옷감으로 적극적으로 쇼핑해서 구입해야겠다.

내가 만들 생각이지만 어머니가 원하신다면 만드는 유흥을 양보(?) 해 드리... 좋아하실 테니 그러니 기꺼이 양보..... 음... 솔직해지겠다.

어머니, 만들어주세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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