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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Jun 04. 2022

자잘스토리 7 - 027 - 알맞게







1


월남쌈을 해 먹었다.

어머니가 수술 후 입맛도 없고 밥도 잘 못 드시겠다고 해서 재료를 구입해서 해 먹었다.

월남쌈은 여러 가지 채소를 잘게 채 썰어 그 채소들을 조금씩 라이스페이퍼에 싸 먹는 음식이다.

아버지, 어머니, 나. 이렇게 세 사람이 먹을 분량을 생각하니 각 재료를 조금 많이씩 마련했다.

푸짐하고 먹음직스럽게, 양껏 드셔도 모자람 없는 양을 내놓으려고 열심히 재료를 손질했다.




2


두 분 모두 맛있게 드셨다. 한참을 드시고는 어머니는


"나는 그만 먹는다. 배부르다."


...라고 하시며 손을 놓으셨고, 아버지와 나는 계속 쌈을 싸먹었다.

너무 재료를 많이 준비했는지 먹어도 먹어도 재료가 줄어들지 않았다.

배는 이미 차고 부른 상태였다.




3


"이거 남으면 다음에 다시 먹을 수도 없는데 다 먹어 치워야지."


...라고 하시는 아버지 말씀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4


나는 모자람 없이 양껏 드시라고 재료를 넉넉히 준비한 것인데,

아버지는 물론 나 역시도 숙제하듯이 그걸 꾸역꾸역 먹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는 거의 재료 손질 과정에서 나오는 꼭지나 상한 겉잎 등이다.

요리해서 먹고 남은 음식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루 이틀 사이에 먹을 양만을 요리해서 그렇기도 하고 사흘 정도까지 먹을 때에는 온 가족이 그 음식만 공략한다. 안 그러면 상해서 버리게 되는, 음식물 낭비니까 말이다.




5


월남쌈 재료인 채소들은 음식 특성상, 깔끔하게 남기 때문에 나중에 마요네즈를 섞어 먹어도 되고,

라면 끓일 때는 팽이버섯 같은 걸 넣어도 되고, 무 싹 같은 것도 활용도가 많고...

아무튼 남겨도 버리지 않고 재사용이 가능해서 넉넉하게 마련한 것이다.

애초에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실전에서 월남쌈을 먹고 있는 나의 모습은


'남기면 안 돼.'


...라는 강박 비슷한 마음으로 전투적인 식사를 하고 있었다.

흡사 보릿고개의 사람들처럼 재료 한 가지라도 남길 수 없다는 투철한 정신으로 쌈을 먹고 있으니 내 의도와는 달리 진행되는 중이었다.




6


다행히 위장이 터지기 전에 재료가 소진되었다.

나는 반성했다.

'넉넉하게'가 좋은 게 아니었다.

우리 집에는 '알맞게'가 제일 환영받는 단어인 것 같다.


'넉넉해서 참 잘 먹었다.'


라는 말씀을 듣고 싶어서 괜스레 많이씩 준비하던 것이 위장을 찢어지게 할 뻔.

'알맞게' 마련했어야 했다.

('알'로 시작하는 단어들이 언뜻 떠오른다.

알맞게, 알차게, 알뜰하게, 알싸하게, 알랑방귀, 알까기....알랑가몰라... 음... (꿩 먹고) 알 먹고...)

뭐, 어찌 되었건 간에 위장 상해의 위험은 있었으나, 부모님이 "잘 먹었다."라고 수고로움을 다독여주시니 기분이 좋았다.




7


모자랄까 싶어서 라이스페이퍼를 많이 사 왔었다.

다음부터는 재료도 간소하게 양도 적절하게 준비하여 소박하고 알맞은 월남쌈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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