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머니께 혼났다.
월남쌈을 준비하느라 사용한 금액을 아시고는,
"그 돈이면 외식을 몇 번을 하겠다."
...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세 사람이 월남쌈을 세 번 먹었어요. 그 금액에 월남쌈 9인분이면 저렴한 거라고요."
라고 반박했더니, 긍정도 부정도 안 하신 채 그냥 휙 가버리신다.
2
어머니께 혼났다.
우리 어머니는 비건은 아니시지만 채식 위주의 식사를 즐겨 하신다.
요즘 입맛이 없으신지 도통 안 드시길래 치즈 샐러드를 준비해 봤다.
손바닥만 한 치즈가 고가였지만 단백질 섭취를 위해 빼놓을 수 없었다.
토마토도 사고, 양상추도 사고, 발사믹 소스도 사고, 아무튼 구색 맞춰서 재료를 구입, 손질하여 어머니께 드렸다. 어머니 왈,
"샐러드가 먹고 싶으면 파는 거 하나 사 와서 혼자 먹지 뭣하러 이렇게 재료를 많이 사는 거야?"
...라고 날 혼내신다.
"나 먹으려고 그러나, 뭐. 어무니가 삐쩍 말라가니까 먹이려고 산 거지."
...라고 했다. 좀 섭섭해서 웃어른에게 하는 말 치곤 거칠게 얘기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어머니는 별말씀 안 하신다.
음... 자식이 생각해 드리니, 좋으셨나? 아니면 샐러드 맛이 좋으셨나?
3
아버지께 혼났다.
며칠을 두고 연달아 택배가 계속 오니 아버지가 화가 나셨나 보다.
"네가 통장에 돈이 들어온다고 자꾸 쓰나 본데, 그러면 안 돼."
...라고 언질을 주신다. 과소비라 생각하시고 심기가 불편하셨는데 또 택배가 도착했다.
보시고는 아버지, 살짝 언성을 높이셨다. (택배가 눈치도 없이 왜 그때 오는지, 원.)
"뭘 또 산 거야?"
"아니..., 해쉬 브라운이라고 외국식 감자전 같은 게 있어요. 어무니도 좋아하실 것 같고,
아부지 드실 샌드위치에 넣어서 드려도 좋을 것 같고, 여러모로 괜찮을 것 같아서 샀어요..."
풀이 죽어서 변명처럼 말씀드렸는데, 의외로 아버지의 반응이 거칠어지지 않으셨다.
곱씹어 생각해 보니 '아부지 드실 샌드위치에...'라는 부분이 아버지의 성난 심사를 보드랍게 만든 것 같다.
요즘 온통 어머니만 신경 써 드린 감이 없지 않은데,
아버지는 당신을 위해 샌드위치 만들 구상을 하고 있는 딸내미가 기특해 보이신 게 아닐까 싶다.
아버지의 거칠던 표정이 온화하게 변화하는 게 느껴졌다.
4
내가 뭘 사기만 하면 부모님이 혼을 내셔서 난감하다.
딱히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시는 분들이 아니시면서도 관찰해 보면 정말 도통 구입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분들이다.
그뿐인가, 드시는 것도 그냥 한식 위주로 수십 년을 죽 한결같이 드셔오셨다.
다른 식재료를 몰라서 안 드신 것보다는 검소함이 몸에 배서 그냥 한결같은 한식으로 드시고 사신 것이다.
내가 돈이 많아서 자꾸 먹거리를 사겠는가?
살찌기 싫어서 해쉬브라운 같은 건 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부모님이 감자전 같은 거 좋아하시고, 맛이 엇비슷하지만 약간은 색다른 느낌이라 드시게 하고 싶어서 주문을 한 건데, 주문하면서도, 결제하면서도 '한 소리 들을 것 같은걸'하고 각오를 해야 했다.
5
해쉬 브라운 같은 경우, 정말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주문했다.
웹 화면에서 보이는 해쉬브라운은 포장이 부실해서 불량식품처럼 보이는지라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만약, 구워서 맛을 봤다? 맛이 거지 같았다?
그럼 질문하시겠지?
'이게 얼마냐?'
'000원 이요.'
'이걸 돈 주고 사니?'
나, 주눅 든다...
..같은 상황 전개가 뇌리에 떠오른 것이다.
몇 번 겪은 후라 익숙해질 만도 한데, 결제를 할 때마다 뇌리에 떠올라 어쩐지 그때마다 담력 시험 치르는 기분이다. (안 그래도 나 소심하고 겁 많은데... 흠.)
7
해쉬 브라운의 구입 결과를 말하자면,
빰빠라밤 빰빰빰 빰빠라밤~~
성공적이었다.
어머니는 드시고 "맛있다.'라고 한마디 하시며 한 장 더 구워달라고 하셨고,
아버지도 별다른 말씀 없이 깨끗이 드셨다.
휴우~
조마조마함에서 벗어났다.
그럼 이제 나도 샐러드 한 접시 '쒸원'하게 먹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