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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May 28. 2022

자잘스토리 7 - 026 - 환호 혹은 추모







1


어머니가 어깨 수술을 하시고 아물기 전이라서 팔 운신을 잘 못하신다.

그 덕에 아버지와 나는 좀 부지런해졌다.

어머니가 하라고 내어주신 집안일은, 별일이 있는 게 아니면 곧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하고 끝을 냈다.

아버지에게는 주로 텃밭 물 주기 같은 일이 주어졌고, 정해주지 않으셨어도 나는 그냥 상 차리는 게 일이 되었는데, 오늘은 어머니가 색다른 걸 원하셨다.




2


"아빠랑 나는 옥상 가서 텃밭 일을 할 테니, 그제 밭에서 뜯어온 아욱으로 아욱죽을 만들어놔라."


"만드는 거 옆에서 안 봐주세요?"


"저번에 내가 만들 때 봤잖아. 알아서 해. 아빠랑 나는 옥상에서 할 일이 많으니까."


그러시고는 아욱이라고 추정되는 풀떼기를 잔뜩 놔두시고 어머니는 옥상으로 자취를 감추셨다.




3


이럴 수가 있는가, 전에 아욱죽 만드실 때 "잘 봐. 잘 보라구."라고 하실 때 알아봤어야 했다.

어쩐지 자꾸 "잘 봐."를 반복하시길래 나중에 내가 저걸 만들게 되겠구나 예상은 했었다.

당연히 곁에서 봐주실 거라 생각했는데 '알아서 해.'라고 하시니 서럽고 슬프고 괴롭고 번뇌에 휩싸이는 이 감정은 어떻게 처리할지 당연히... 난감하지 않다.


아욱죽 요리법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물에 다시마 넣어주고 쌀, 된장, 고추장 약간을 넣고 익히다가 아욱 잎을 넣고 푹푹 익혀주면 된다.

씻어놓은 쌀이 있어서 손에 물 닿는 일은 아욱 잎을 씻는 게 다였다.


어려운 건 간을 맞추는 일이었다. 큰 냄비에 죽을 만드는데 간 조절이 가늠이 되지 않았다. 몇 번 된장을 넣고 맛을 보니 짰다.

이 사태를 어찌하나 궁리하다가 물을 더 부었다. 맛을 봤는데 여전히 짰다.

잠시 옥상에 올라가 부모님이 땀을 흘리셨는지 봤다.

땀을 흘리셨다면 염분 섭취도 좀 필요하실텐데... 아직 여름은 아니라 덥지 않았고 땀 흘리지 않으셨다.

집으로 돌아와 냄비를 봤다. 쌀이 불어서 수분기가 없어져갔다. 그대로 쌀이 불어가다간 떡이 될 판이었다.


'간이고 뭐고, 떡보단 죽이 되어야 하니깐, 에라이~ 물 붓자.'


그렇게 해서 다행히 겉보기에 걸쭉한 아욱죽이 되었을 때 부모님은 텃밭에서 돌아오셨고 나는 조마조마 해하면서 그릇에 죽을 나눠 담았다. 그리고 두 분에게 드렸다.




4


결과는 말하지 않겠다. 나는 겸손한 사람이다. 핫핫핫!

아하하하핫!

웃음으로 대답이 되지 않겠나? 우하하핫!




5


마지막에 물 부은 게 아주 적정량이 잘 들어갔는지 죽의 직감을 만들면서 간도 적당해졌다.

그러나 참사라면, 부모님 죽을 떠드리고 내 죽을 뜰 때 동그랗고 빛나는 적갈색의 뭔가가 보였다.

그게 보이는 순간 숨을 죽였다... 아무래도 벌레 같았다.

나는 무당벌레를 좋아한다. 모양도 예쁘고 크기도 앙증맞고 조용하고 점잖고 움직임도 예쁘다.

녀석은 죽었는데도 흐트러진 모양새 없이 깔끔하고 단정했다.

아욱죽에 벌레가 들어가 불결한 느낌이 아니라, 아욱죽에 귀여운 무당벌레가 빠져 명을 달리한 게 안타까운 느낌이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그 와중에 다행이라면 그 녀석이 내 치아에 뭉개지는 일은 없었으니 그걸로 위안 삼는다.




6


만들 수 있는 음식이 하나 더 추가된 것에 환호를.

첫 아욱죽 요리에 무당벌레의 희생(?)이 있었음에 추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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