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져니 Jul 01. 2022

자잘스토리 7 - 031 - 자잘한 이야기







1


어머니가 간장베이스의 닭 요리를 유튜브로 배우셨는데 이게 정말 맛있었다.

닭을 일단 자작한 기름에 굽다가 돌려서 구워 양면을 바삭하게 익혀준 뒤 양념장을 부어 간과 맛을 더하는 요리였다.

어머니는 어깨 수술 후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않으신 상태인데 나와 아버지가 맛있다고 하니 더 해주시고 싶으신 모양이었다. 어제 저녁 어머니는,


"닭 날개 구울 때 뒤집고 양념 섞을 때 뒤집어야 하는데 내 어깨가 이러니 니가 해라. 내가 양념장은 만들어줄게."


...라고 하셨고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2


문제는 어머니가 성격이 급하셔서, 기름을 자작하게 부어 닭을 굽다 보니 기름도 튀고 익은 정도를 체크하기도 어렵고, 

그걸 나에게 설명해 주시자니 시간이 걸리고... 그러다 보니 당신이 직접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제가 뒤집을게요."


...라고 해도 어머니는 기름 튀니까 저리 가 있으라는 손짓을 하시고는 결국 양념장 뒤집어 섞는 것 까지 직접 다 하셨다.




3


오늘, 어머니는 내 앞에서


"아이고... 어깨가 큰일 났네.. 쓰면 안되는데..."


...라고 하시는데 소심한 져니, '내 탓인가 봐.'라고 위축되어 있다가도

아침 저녁으로 밭에 물 주고, 어제처럼 닭 요리 손수 다 하시고, 딸이 안 한다고 한 것도 아닌데, 

그냥 성격이 좀 급하셔서 당신이 다 해버리시니 어깨 통증이 꼭 내 탓만은 아닌 것 같다.(회피일까?)




4


아무튼 이날 늦잠을 자느라 아침을 못 챙겨드린 죄인, 이집 딸은, 죄를 만회하기 위해 급히 설문조사를 했다.


"뭐가 드시고 싶으세요? 1번 해시브라운, 2번 샐러드, 3번 토스트."


아버지는 "네가 먹고 싶은 걸로, 아무거나."

어머니는 "감자 쪄라."

그래서 예정에 없던 4번 찐 감자를 마련하기 위해 압력솥에 감자를 넣고 불을 켰다.




5


점심시간이 오기 전, 출출한 타이밍을 잘 맞춰서 찐 감자를 대령했더니, 두 분 모두 아침상의 부실함을 모른 체 넘어가 주시는 것 같다.

아침잠이 많으니, 새벽에 쌀을 씻어놓고 잠들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깜박했다.

어제저녁 밥이 남아있어서 굶으시지는 않으셨으나 국이라도 끓여 놨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하다.


예전에 내 친구가 '어머니가 몸이 아프셔서 모든 살림살이를 자신이 해야 한다.'라고 '얼마나 스트레스가 되는지 모른다.'라고 말했었다. 

힘들었겠다....라고 수년이 지난 이제서야 공감이 된다.

친구, 그때 공감 못해줘서 미안.




6


그러면서 정말 주부의 삶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느끼게 된다.

식재료를 알뜰하게 요리에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버리는 것 없게끔 남김없이 다 소비해버리는 것도 그렇고, 

한정된 재료 안에서 다양하게 반찬을 변주해 내놓는 것도, 그렇게 매일 두세 번은 뭘 해 먹을까 생각해야 하는 것도...

머리도 부지런하게 가동해야 하고 몸도 부지런히 움직여서 재료를 사 와야 하고, 

장 볼 때는 제철 채소인지 가늠해 봐야 하고 신선도와 가격도 따져봐야 한다.

아무튼 요리 하나 내놓기까지 생각하고 궁리해야 할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어쩐지 요리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머리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 우리 어머니는 천재?




7


이 글이 무슨 글이라고 생각하는가?

닭 날개 요리를 기가 막히게 잘하게 되신 어머니에 대한 칭송? 

살림 잘 하시는 어머니의 정체는 천재라는 가설?

늦잠 자는 딸내미가 내 놓은 간식 찐 감자의 효과?




8


자잘 자잘 스토리이다.

너무 빡빡하게 주제며 문제의식을 찾으려 하지 마시길.

자잘한 이야기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잘스토리 7 - 030 - 어머니와 데이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