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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Oct 01. 2022

자잘스토리 7 - 044 - 누가 좋나








1


어머니가 떡갈비를 구우시며 점심을 준비하고 계셨고 식탁에서 아버지와 내가 잠깐 담소를 나누었다.


"엄마가 좋냐, 내가 좋냐?"


평소에도 부모님은 나를 어리게 보신다. 막내이기도 하고 실제 미성숙(?) 하기도 해서 괜스레 장난을 걸어오시기도 한다.

그래도 그렇지, 내 나이가 몇 개인데 '누가 좋냐?'라니?

아버지의 장난이 짓궂은 것 같아서 버럭 소리를 쳤다.


"어무니가 좋아요! 어무니가!"


아버지 왈,


"그럼 나는?"




2


"아부지가 해준 게 뭐가 있어요? 하나도 없어!"


농담이기에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던 말이다.

그야말로 장난이고 농담이니까.

만약 진짜였다면 속에 담아두고 늘 원망했을 것이다.

진짜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막말을 가장한 농담'을 했던 것이다.




3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내가 아침마다 물을 떠와서 정수기에 넣어주는데? 그건?

생수통에 물 다 떨어지면.... 보자고, 내가 하나도 해준 게 없는지."


나, 물을 하루에 굉장히 많이 먹는다. 그냥 먹기도 하지만 커피를 희석해 마실 때도 생수통 물을 이용한다.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 등산 결과(받아오신 약수)의 최대 수혜자인 걸 아시는 거다.

물이 당장 없어지면 목마른 사람은 난데 나는 물통이 무거워서 절대 거꾸로 들어 알맞게 끼워 넣을 수 없으니까.

끼워 넣을 수 있다 해도 약수를 안 받아오시면 말짱 황이니까.

아버지가 진짜 화나셨나 싶어서 긴장했으나 입가에 허허하는 미소가 끌려다니는 걸로 봐선 노한 건 아니셨다.




4


근데 나중에 아버지가 말씀하시는데 내 말에 정말 섭섭하시긴 했나 보더라.

내가 놀라서 '진짜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거리낌 없이 말한 것'이라고 해명하니, 그제야 마음이 풀어지신 듯 했다.

아버지가 늘 받아주셔서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아무래도 사람 간의 감정과 대화에서 어긋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내가 간과한 것 같다.

역시 말은 조심해서 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솔직하게 서운함을 드러내고 물어봐 주셔서 풀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리고 나서, 요즘 당신께서 내게 베풀고 있는 사랑인 <딸 방에 모기향 매일 피워주기>를 시전해 주셨다.

따랑해,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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