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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하고 쌀 씻어 전기밥솥에 넣고 취사 버튼,
정확히는 빠른 백미 취사 버튼을 눌렀다.
문득 어릴 적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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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 오빠가 군대 갔다 와서 우리 집에 잠시 지내던 때였다.
내가 초등 저학년, 한 8~9살쯤 되었을 시기였다.
어쩌다 보니 집에서 사촌 오빠와 나, 이렇게 단둘이서 밥을 먹었는데, 내가 밥을 먹다가 밥알을 흘렸다.
그러자 사촌 오빠가 나를 가르쳤다.
"큰아버지가 쌀 한 톨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줄 알아?
매일 물 주고 잡초 뽑고 그렇게 1년 동안을 걸려서 이 밥알을 만드는 거야.
흘려야겠어, 안 해야겠어?"
큰아버지는 사촌 오빠의 아버지로 농부이시다. 우리 집에서 먹는 밥은 큰아버지가 보내주시는 쌀이었다.
밥알을 흘린 게 정말 나쁜 짓처럼 이야기하는 오빠가 섭섭했지만 나도 이해는 했다.
게다가 학교에서도 잡곡 혼밥을 해서 쌀을 아껴야 한다는 교육을 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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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 오빠는 내게 어떤 대답을 원했을까?
'응. 안 흘리고 잘 먹을게.'
...쯤의 대답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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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답 대신 물었다.
"쌀 한 톨을 키우려면 1년이 걸려? 큰아버지는 몇 살이셔? 이 많은 쌀알은?
이거 다 키우려면... 큰아버지 천 살이야?."
사촌 오빠가 잠시 침묵하다가 풋~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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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비유, 상징, 과장 같은 걸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런 나에게 그 모든 수사법을 사용하면... 난 곧이곧대로 해석할 수밖에.
나와 15살 차이 나는 사촌 오빠는 아직 젊은이의 순수함과 친절함이 풍부했기에 내게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쌀 한 알이라고 한 건, 그만큼 쌀이 중요해서 한 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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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건 아침에 쌀을 씻으며 느낀다.
쌀을 씻고 물을 버릴 때면, 쌀알 하나라도 물살에 휩쓸려 버려지지 않도록 정말 신경을 많이 쓴다.
쌀은 귀한 것, 아껴야 하는 식량, 소중한 곡식... 등 그 시절 머릿 속에 장착된 쌀에 대한 그 옛날의 개념 때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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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은 흔해지고, 쌀 소비량은 줄어든다지만 밥은 한국인의 주식.
따끈하게 잘 익은 밥은 씹을 수록 고소하다.
나는 밥이 좋다.
밥솥에서 취사 완료 메시지와 벨이 울렸다.
밥 먹으러 가겠다.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