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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Oct 15. 2022

자잘스토리 7 - 046 - 고발







1


어머니를 고발한다.





2


어머니는 올 5월에 오른쪽 어깨를 수술하셨고, 어깨를 아끼며 당분간 쉬어주라는 의사의 충고도 들으셨다.

그런데 어머니는 가만히 있지를 않으셨다.

어깨가 안 좋으니 밥 지을 쌀을 씻는 건 나보고 하라고 하셨다.

비록 내가 아침잠이 많아서 쌀을 씻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그래도 깨어있을 때는 성실히 쌀을 씻어 밥을 지었다.

아버지도 뭔가 힘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 있으면 어머니 대신 하려고 애를 쓰셨다.

어머니에 대한 고발은 이제 시작이다.




3


어머니는 집에 오셔서 한 1주일 쉬셨던가 했다. 그 뒤부터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셨다..

텃밭의 고추를 딴다거나, 배춧잎에 분무기로 농약을 쓩쓩 뿌리신다던가, 그런 일들을 하는데, 손아귀는 물론 팔을 안 움직일 수 없다. 그런 거 놔두고 쉬시라고 해도 "안 하면 그것들을 다 벌레 먹여 못쓰게 할래?"라고 하시는데, '그래도 하지 마시라'고, '그냥 죽이라'라고 해도 그러실 수 없다는 게 어머니의 입장이다.


그 이후 어느 날은 어머니가 피로해 하시길래 뭘 하셨느냐고 여쭸더니, "옥상의 화분을 한쪽으로 치우느라 어깨를 좀 썼지."라고 하시는데 기함할 일이었다.

아무것도 안 해야 할 어깨를, 옥상 화분이 또 올망졸망 작은 게 아니라 제법 큼지막한 것들이라, 어째서 어깨를 혹사시키는지 이해가 어려웠다.

또 대체 아픈 어깨로 그 화분들을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미스터리였다.




4


이런 비슷한 일이 수십 가지인데 점점 강도가 심해지고 계시다.

얼마 전엔 팥죽을 쑤신다고 하셨다.

팥을 삶아 간 것까지는 이해를 하는데, 그걸 큰 솥에 넣고 계속 젓고 계셨다, 그것도 오른팔로.

그런가 하면 새알을 넣어야 하신다며 찹쌀 반죽을 하고 계셨다.

내가 뒤늦게 알아서 반죽에 손대었는데 찹쌀은 물기가 많으면 나중에 질퍽해진다고 물도 많이 안 넣어서 찹쌀 반죽이 물기 없이 '되'었고, 반죽 주변에는 더 뭉쳐야 할 가루들이 많아서 계속 치대야 했다.

물기도 없는 반죽을 5분 이상 치댔어도 여전히 다 뭉쳐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정도면 되었다고 하며 이제 새알을 만들자고 하셨다.

물기 없는 퍽퍽한 반죽을 손안에서 굴려보니 부스러졌다. 꽉꽉 눌러서 찰기를 만든 뒤 손안에서 살살 굴려야 겨우 왕 구슬만 한 새알이 만들어졌다. 그걸 100여 개를 만들었다.

손목이 나갈 것 같았고 어깨는 뻐근했다. 내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어머니 손과 어깨는?




5


오늘은 어머니가 내게 일을 시키셨다.

찹쌀 4kg을 씻으라고 하셨다.

뭘 하시길래 이렇게 많이 씻어야 하느냐고 여쭸더니 '떡'을 하시겠단다.

씻어서 방앗간에 가져가신다니, 뭐 씻었다.

어머니가 드디어 어깨를 아끼기 시작하셨구나, 하고 신날 지경이었다.

낮이 되어서 물 마시러 거실에 나갔더니....

어머니가 어깨에 힘을 실어 손으로 그릇 안을 반복적으로 누르고 계셨다.

반죽을 하고 계신 거였다.


"무슨 반죽이에요?"


"수제비 해먹으려고."


거실 저쪽에서 그 말씀을 들으신 아버지와 질문을 한 나는 동시에 외쳤다.


"하지 마!"


"하지 마요!"


어깨가 아프다는 분이, 덧나고 덧나서 아직도 아물지 않았을 텐데 자꾸 일을 하시니 보는 우리는 참....

내가 말은 안 했지만, 이거 신종 고문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게끔 어머니는 어깨 쓰는 일만 골라서 하신다. 

사실 뭐 어깨를 안 쓰는 일이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그래도 수술한 지 불과 몇 개월 밖에 안됐는데, 그냥 편히 쉬시면 될 것을.... 

자꾸 보는 이로 하여금 괴롭게 만드는 이런 고문은 처단 받아야 마땅하다.




6


어머니를 고발한다.

어머니는 지속적으로 아버지와 나를 고문했다.

일하지 말라고 해도 무시하고 일을 했고, 그래서 어깨에 통증이 오면 당신은 아프시겠지만, 보는 이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시달린 나머지 몸서리를 쳐야 했다.

고발한다, 강력히 고발한다, 하지만... 고발 안 하게 어무니 제발 그냥 좀 쉬세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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