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운동을 꾸준히 하셔서 나보다 체력이 좋으시다.
그리고 어머니는 눈치도 좋으시다.
이런 정보를 왜 공개하느냐? 이유가 있다.
오늘 나는 서울 도심부 쪽으로 일이 있어서 외출해야 했다.
오가는 시간이 길지만 막상 가서 해야 하는 일은 나 혼자서 해야 하는 간단한 일정, 그저 오가는 시간이 지루할 따름이었다.
이런 사정을 아는 어머니 왈,
"오가느라 심심하면 같이 가줄까?"
...라고 하시더니 오늘 나의 외출 일정을 함께 하셨다.
일을 잘 해결하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내부 상점을 들르고 싶다는 어머니의 의견에 따라 나는 어머니를 그 상점으로 이끌었다.
지하철 내부가 복잡해서 좀 돌아서 가야 했는데, 나는 체력 없는 집순이, 오랜만의 몇 시간 외출에 진이 다 빠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나보다 체력이 좋으셔서 거침없이 걸어 다니셨다.
나는 힘겨운데, 어머니는 매장에서 옷들을 훑어보시며 즐겁게 쇼핑을 하셨다.
어머니가 이곳을 들르시겠다고 하실 때 나는
"대신 30분만 하기에요."
...라고 미리 약속을 받아놨다.
나는 점점 에너지가 소진되어 힘들어지고 있었다.
목도 말랐다.
조금씩 피곤하고 만사가 짜증이 났다.
괜스레 사소한 어머니의 말씀에 핀잔을 주고 막 그랬다.
(그래, 난 몹쓸 자식이다.)
약속대로 30분의 쇼핑이 끝나자 다시 지하철을 타기 위해 돌아서 왔던 길을 다시 힘겹게 돌아가야 했다.
가는 길에 자판기가 있었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그러신다.
"내가 커피숍 음료는 사줄 데가 없으니 못 사주겠고 자판기 음료수는 하나 사주마."
나는 갑자기 멍했다.
어머니가 왜 내게 음료수를? 물론 나는 목이 마르긴 했는데...
문득, 전에 어머니와 쇼핑할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어머니는 갑작스럽게 말씀하셨다.
"저기서 뭣 좀 먹고 가자. 넌 배고파서 힘들어지면 고약해진다니깐."
"......"
고로 이 음료 캔은 고약해진 내 성정을 다스리기 위한 것으로
어머니의 배려가 담긴 햇볕 정책, 명명하자면 '딸 다스리기 기법'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눈치가 빠르시다.
나는 내가 목이 말라 기분이 저조한 줄은 몰랐다.
나도 모르는 내 상태를 어머니가 알아차리신다.
어머니는 눈치가 빠르시고 나를 다스리는 법을 아신다.
존경하지만...
왠지 나는 '식음료만 제공하면 순해지는 먹보'쯤 된 것 같아서 씁쓸했다.
흠...
집에 와서 폰앱을 봤더니 7천보를 걸었다.
힘들만하지 않은가?
목마를만 하지 않은가?
흐음....
에잇,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