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화를 나누다가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허술한 모습을 보였다.
말실수나 실례 같은 건 아니고
순전히 혼자 있을 때 편해서 행하는 제스처인데,
주변이 너무 조용하다 보니 순간 혼자 있는 줄 알고
나도 모르게 그 행동을 한 것이다.
근데 그 모습이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상대에겐 좀 재미있게 보였던 모양이다.
상대와 나는 알고 지낸지 한 3년 됐나?
너무 드물게 보기 때문에 낯이 가려지는데,
이날 웬일인지 나의 낯가림이 풀어지고 좀 편했었나 보다.
상대는 나의 허술한 모습에 웃음을 지었다.
늘 일 때문에 딱딱하게 할 말만 주고 받는데,
이날은 상대의 까칠한 모양새가 한결 수그러 들어서
따뜻한 느낌이었다.
말미엔 다음번에 만날 때 알아와야 할 것을, 알고 있는데,
굳이 말해주며 한번 더 웃더라.
2
솔직히 그동안 이 상대에게 기분 나빴던 일이 아! 주! 많았던 터이다.
이날의 만남도 안 만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만난 건데,
사람이... 웃음 한 번으로 이렇게 인상이 달라질 수
있는지는 몰랐지 뭔가.
3
속으로
'그런다고 내가 겪은 고초를 잊을 것 같으냣!'
...라고 일갈했으나,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그저 직업에 충실하느라 할 일을 했을 뿐이지 싶다.
4
그럼에도 그가 내보인 방안은....
뭐랄까, 검증 안된 방법을 내게 먼저 해보라고 권하는 것 같아서,
왜 하필 내가 그 방법을 해봐야 하는지,
안전하고 보장된 방법이 아닌 것 같은데,
어째서 나한테 그 방법을 제시하는지 기분 나쁘고 억울했다.
그러나 상대가 더 전문가, 나의 발언권은 크게 소용없어 보인다.
5
그래도 제시받은 그 방안이 아주 효과가 없는 건 아니라서
지금은 기분이 좀 괜찮다.
오늘 만났을 때 그쪽이 제시한 방법이 전과 다를 바 없어서
다시 한 번 기분이 나빴지만, 어쩌겠는가, 따를 뿐이다.
참 내, '주님을 따를 뿐'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으휴... 아무튼, 참... 참... 참....이다.
6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기까지 시일이 좀 걸릴 것 같다.
그동안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을 많이 해봐야겠다.
그래야 작업 들어갔을 때, 집중력이 살 테니 말이다.
오늘은 참 하루가 길었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