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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Jan 21. 2023

자잘스토리 7 - 060 - 운송장과 머리카락






1


요즘 택배 주문을 많이 했다.

주문한 물건들이 속속들이 도착하면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운송장 떼라. 요즘 개인정보 유출이니 뭐니 해서 시끄럽더라.

떼서 찢어버려."


...라고 하셨다.

나도 충분히 동의한다. 그런데 말이다.

운송장을 떼면 스티커 부분이 손상되지 않은 채 완전히 

박스와 분리될 때가 있다.

그 운송장 스티커를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손으로 잘 잡고 스티커 끈끈이 부분을 방바닥에 대었다가 떼면,

나의 긴 머리카락들이 딸려 올라온다.

머리카락이 길다 보니 몇 번 안 해도 엄청나게 많이 붙는다.

아무튼 그렇게 머리카락 범벅이 된 운송장을

비로소 내방 휴지통에 버리는데, 이때 잠깐 갈등이 된다.




2


원래대로라면 운송장의 글씨가 맥락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어서 버려야 하겠지만,

머리카락을 붙인 이 스티커는 찢기가 애매하다.

가위로 자른다 해도 잘게 자를수록 머리카락도 잘게 잘리고 일부는 여기저기로 흩날릴 것 같다.

그리고... 어차피 버려야 하는 머리카락일지언정,

'신체발부 수지부모'라고 하지 않던가.

버려지는 머리카락을 온전히 형체대로 버려줘야 할 것만 같고 말이다.




3


그래서 나는 머리카락이 붙은 운송장을 찢지 않고

그냥 휴지통에 버렸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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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0년, 30세기 과학자들은 21세기의 인류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유추하기 위해, 과거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곳을 찾기 시작한다.

일단 매립지역을 찾아내자 그 지역을 출입 금지 지역으로 만들고

암석 시추하듯이 그 쓰레기 매립 땅을 시추했다.

그 결과 2023년 1월의 것으로 추정되는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그것은 택배 운송장이었다.

어느 이름 앞으로 발행된 택배 운송장에는

접수일, 이름, 주소, 전화번호, 바코드 등이 인쇄되어 있었다.

일찍이 인터넷 배달 문화가 발전했다던 한국의 택배 문화와

운송장, 반환장 같은 것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정보였다.


운송장 정도의 그런 형식 정보는 알고 있었기에 큰 발견이 아니었다.

다소 연구소 분위기가 어두울 때 한 과학자가 

발굴된 그 종이 뒤에 가느다란 실들이 끊어지지도 않고

붙어 있는 것을 이상스럽게 여겼다.

과학자는 그 실들을 세척, 분석, 관찰했다.

그 결과 그건 877년 전 인간의 머리카락임이 드러났다.


30세기 과학자들은 머리카락을 세척한 후,

머리카락 세포에서 DNA 추출에 성공했다.


DNA를 검사해 본 바 이 머리카락의 주인공은 여자였고, 

건강한 신체를 가진 것으로 판단,

컴퓨터로 염기쌍과 순서를 읽어 추정 형상 결과값을

모니터로 확인해 봤다.


그들은 동시에 21세기 고 서울의 전자 문서를 살펴보며 드디어,

운송장의 주소와 이름이 동일한 고 서울의 시민을 찾아냈다.

877년 전의 모발 DNA로 추정한 인물 CG를 보니,

고 서울시 전자 문서에 나와있는 사진과 비교해 볼 때 

놀라울 정도로 흡사함을 확인했다.

동일인이 아니라고 하기가 더 어려울 정도였다.

어째서 운송장에 머리카락이 한올도 아니고 그렇게 여러 가닥이 붙어있을까를 궁금해하자 

한 명의 과학자가 말한다.


"아무래도 그 시대엔 운송장의 끈끈이 면이 활용하기 좋겠다 싶었던 게 아닐까요?

그냥 머리카락 청소를 한 것 같아요.

음... 이 여자는 그냥 머리카락 청소를 한 것 뿐인데,

수 세기를 건너 이렇게 자신이 언급될지는 아마 몰랐겠지요. 

뭔가 알뜰하고 청결하고 깨끗한 걸 좋아하는 미인이었던 것 같아요."


옆의 다른 과학자가 모니터의 사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미인이에요. 이 시대에서 선호하는 얼굴 모양새를 가지고 있네요.

물론 21세기에서는 평범한 얼굴이었겠지만... 참 안타깝네요.

30세기 지금 태어났다면 엄청난 인기를 누릴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골상학적으로 이 여자와 같은 두상 형태는 번잡한 걸 싫어하고

조용히 누릴 수 있는 명상 같은 취미를 선호하는 사람의 두상 모양새이지요.

정말 그런 성품인지 알고 싶어지는군요."


과학자들은 이 여자 DNA로 복제인간을 만들어 여러 연구를 하자는 의논을 했다.

21세기의 건강한 인간이 30세기의 자연 환경에서 적응하며 살수 있을지,

또 학자들이 언급한 골상학적으로 추정한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태어나는지,

또한 21세기 사회의 인간이, 무려 9세기의 간격을 극복하며, 30세기 사회를

살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를 계획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녀의 머리카락을 잠들도록 내버려 둬라.'


...라는, 자연주의 시민 단체의 연구 반대 의견이 있었고,

그에 동조하는 30세기 시민들의 뜻이 우세해서

결국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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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뭐, 머리카락 운송장에 붙이고 버린다고

당장에 큰일이 일어나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좀 귀찮더라도 운송장에서 이름과 주소는

좀 훼손해서 버려야 할 것 같다.

운송장 끈끈이가 머리카락 청소에 참 적당한데...

참 적당한데... 말을 못하겠네...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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