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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Jul 15. 2023

자잘스토리 7 - 085 - 화요일의 폭우






1


비가 엄청스레 내리던 화요일,

엄청나게 잠만 잤다.




2


새벽부터 비 소식을 알고 있었다.

빗소리는 듣고 싶어서 창을 열어뒀고

자는 와중에 폭우가 내리는 것을 감지했다.

잠은 계속 자야 했으나 빗물이 방안으로 들이치는 건 막아야 했다.


그래서 그 와중에 일어나 창문을 확 닫아버리는 게 아니라

빗소리는 들리되 비는 들이치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틈을 남기고 창을 닫았다.




3


그러나 엄청난 폭우이지 않았던가.

적절한 틈으로도 빗물이 조금 들이쳤다.

들이쳐 들어온 빗물이 팔에 닿아서 설풋 깼다.

상식적으로 창을 완전히 닫아야 하겠으나

절대 빗소리의 향연을 포기할 수 없었다.

잠 잘 때 자더라도 빗소리는 빗소리대로 꿈 속에서 들어야 했다.

그래서 버티컬 블라인드를 조절했다.

그 와중에 완전히 버티컬을 닫아야 했으나

이번엔 바람이 살짝 들어오는 것을 포기하기 싫어서

그것 역시 적절한 틈을 남겨두고 닫았다.




4


일어나 보니 하루는 다 지나갔고

비도 그쳤고 방안엔 습기만 눅눅하게 남았다.


평소 같으면 허탈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폭우 속의 안온한 숙면.

세상 쓸어갈 듯이 몰아치던 장대비와

제법 머리 굵은 어린애 정도까지는 겁먹게 만들

번개의 번득임과 천둥의 울음이 있던 하루를,

정말 쌔근쌔근 잤다.

피곤한 건 일요일이었으니 월요일에 잠들었어야 할 법한데,

월요일도 좀 번잡하게 보냈더니 이틀 치 피로가 누적되었는지,

화요일에, 폭우 몰아치는 화요일에 쌔근쌔근 세상 모르고 잤다.

물론 자는 와중에 일어나서 창문 틈 조절하고

다시 자다가 일어나서 버티컬 조절하고...


짜증이나 거슬림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폭우 소리를 만끽하겠다는 자발적 마음으로 거부감이나 스스럼없이

단지 창문과 블라인드를 조율하는 느낌이었달까.




5


화요일 이날은 국수 한 그릇을 먹었다.

잠잘 때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고 한다.

잠만 충분히 많이 자도 살이 빠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나는 이날, 잠 자다가 설풋 깨서 창문 조율하고, 다시 자다가 버티컬 조율하고,

그러면서 빗소리 듣고 바람 느끼는 등의 향유하는 에너지를

국수 한 그릇의 열량으로 모두 감당해냈다.

내 몸을 해부해서 연구하면, 어쩌면 초초초초초초절약

에너지 모드를 발견해낼 수 있을지도.

음... 거짓부렁이다. 진짜인 줄 알고 납치하지는 않겠지?

세상이 뒤숭숭해서 말 한마디가 무섭다.




6


아련하게 들리는 빗소리, 창틈으로 들어와 버티컬을 흔들고 내 팔을 건드리던 바람,

바람과 함께 들이친 빗방울이 팔에 앉았다가 스르륵 증발하며 시원했고,

그것들 때문에 설풋 깨면서도 기분 상하거나 노엽지 않았다.

깬 것 같지도 않고 그냥 기분 좋게 누리는 기분이었다.


거기에 일어나 보니 기다리던 택배가 떠억!

덤이 얹어져서 온 택배라 기분이 더 좋았다.




7


이쯤 되면 7월 11일은 기념일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너무 감정상으로 안정되고 완벽한 날이었으니까.


근데 711은 외우기가 어렵다.

다른 외워야 할 날들이 많아서 특별히 기념일로 지정은 못하겠다.

미안해 711아.




8


그래도 그 한 때를 쉽게 잊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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