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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Jul 22. 2023

자잘스토리 7 - 086 - 탄산수 같은 장난








1


집에 이온 음료와 탄산수를 각각 한 박스씩 들여놓았다.

그리고 각각 2개씩, 한 번에 4병씩을 냉장고 안에 넣어 식혔다.

미리미리 넣어두어야 마시고 싶을 때 바로바로 꺼내어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2


냉장고 안이 번잡하다.

기본으로 구비되어 있는 반찬 그릇 이외에, 내가 사놓은 각종 소스와

큰 치즈 상자와 거기에 이번에 넣은 음료수 4병까지.

번잡해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3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는데 아버지 왈,


"냉장고에 음료수를 그렇게 많이 넣어둘 필요가 있냐?

한 번에 몇 개씩 넣어두냐?"


"4병이요."


"왜? 2병 넣어두면 안 돼?"


"그래야 바로 꺼내마실 수 있고, 여분도 있어야 안심 되잖아요."


아버지는 몇 마디 더 하셨다.


"얼른 얼른 마시고 냉장고 비워라. 밥 먹고 뭐 마실 거니?"


"탄산수요."


"그래. 위에 넣은 것 부터 바로바로 먹어."


"네."


대화는 거기서 끝나고 식사에 열중했다.

내가 먼저 식사가 끝나서 일어났고 그릇을 개수대에 넣어놓고

시원한 탄산수가 절실하게 요구되어 냉장고를 열어서 꺼냈다.

그 한 병을 꺼내어 방으로 들어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아버지 왈,


"냉장고에 오래 놔두면 탄산도 빠지고 그러니 어여 마셔."


"네."




4


냉장고에서 음료수가 시원해져 있었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톡 쏘는 시원한 탄산수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었다.

비가 주룩 오고 날도 더워서 서둘러 페트병을 잡고 뚜껑을 힘차게 돌렸다.

근데... 이상했다.


'어라?

왜 탄산 빠지는 소리가 안 들리지?

뚜껑은 왜 이러지?'


뚜껑이 헐렁헐렁 했고, 액체는 병의 목 언저리에서 찰랑찰랑해야 하는데,

입구 끝까지 담겨있었다.


얼른 마저 뚜껑을 열고 한 모금 슬쩍 마셔봤다.


맹물이었다.


탄산이 빠지느니 어쩌니 하시더니, 아버지가 탄산수병에 맹물을 채워 넣어놓으신 것이다.




5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오고 그냥 탄산수가 간절해서 다시 냉장고로 향하는데,

내 방문이 열리자 어머니께서 와락 웃으신다.

아부지 어무니, 두 분 한 패이시다.

어무니는 식사 중에 아부지가 왜 음료수 운운하시는지 아셨던 게 분명한데 침묵으로 동조하셨다.

이때 아버지는 아직 식사 중이셨는데 아버지의 포커 페이스가 훌륭하셨다.

웃음기 하나 없이 묵묵히 호로록 오이냉국 국물을 떠드시는데, 되게 얄미우시더라.

곧 아버지는 내 표정을 살피며 물으셨다.


"탄산 빠졌냐?"


살짝 열받았던 나는 여기서 웃음보가 터졌다.

내 정말 황당하고, 이런 장난에 말려들 줄 몰랐다.




6


병을 비우고 물을 채워 넣고, 딸내미가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그 자리에 그대로, 

그러나 맨 먼저 잡히도록 앞쪽에 놓아두시는 그 치밀함.

계획의 과정을 유추하면 유쾌하다.

아부지는 물을 채워 넣으시고 넣어두시면서 왠지 껄껄 웃으셨을 것 같다.

어머니도 말리시지 않으셨던 것으로 보아 즐거워하셨을 것 같고.


살짝 빈정 상했던 나는, 기분이 상했는데도,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웃고 말았으며, 아버지의 장난으로 당신은 물론 어머니까지 웃음 범벅으로 만드셨으니

정말 대대대성공적 장난이 아닐 수 없겠다.




7


콜라는 사들이지 않기로 했다.

탄산수니까 맹물이었지, 콜라였으면 간장이었을 수도.

아니다. 우리 아버지 그렇게 독하게 장난하지는 않으실 분.

아무튼 탄산수 같이 톡 쏘는, 아버지의 장난 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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