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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Aug 19. 2023

자잘스토리 7 - 090 - 따라오는 남자







1


월요일에 목의 염증과 가래, 기침으로 병원엘 갔다.

아침 9시에 문을 열지만 9시에 도착해도 한참 기다려야 하길래

아예 8시 30분에 갔다. 그래도 나는 3번째 환자였다.

일찌감치 간 덕에 비교적 많이 기다리지 않고 진료를 받았다.

아래층 약국에서 약을 지어서 집으로 향했다.




2


집 건물에 도달하기 한 20m전 쯤 되었을까?

우리 어머니와 앞집 아주머니가 내려오고 계셨다.

아주머니는 마스크를 한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셨고

어머니는 나를 알아차리고 눈짓과 손짓으로 알은척을 하고 지나가셨다.

앞집 아주머니는 어머니와 나의 수신호를 못 알아차리셨는데,

내 뒤쪽으로 오고 계시는 어떤 남성분과 아는 사이이신지 그분과

알은척을 하고 계셨다. 곧이어 어머니도 그 남성분을 알아보시는 기색이셨다.

잠깐 인사를 나누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그리고 이내 헤어지는 인사를 하는 기색도 느껴졌다.




3


나는 이미 어머니와 인사를 끝내고 집 쪽으로 가고 있었다.

뒤쪽에서 어머니와 아주머니의 와락 웃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즐거운 일이 있으신 모양인 것 같은데,

덥고 걷는 게 힘들어서 뒤돌아 볼 생각은 못했다.

대략 두 분이 마주친 그 분과 재미있는 말씀을 나누셨나 보다 생각할 따름이었다.

최근 저질 체력이 된 나는 집에 다다를수록 겨우겨우 다가가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갑자기 기분이 쎄 했다.




4


오전이라고는 하지만 주택가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근데 내 뒤쪽으로 누군가가 은밀히 따라붙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도 나보다 큰 남자라는 걸 알아차렸다.

다행히 집 건물에 도착해서 입구에서 출입문 비번을 누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너무 빠르게 다가왔다.

출입문은 열렸고 나는 급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설마 건물 안까지 따라들어오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근데 출입문이 열린 사이 그 남자가 진입하고 있었다.

정말 마음이 다급해졌다. 놀라서 마음이 쿵쾅 거렸다.




5


"져니야!"


'응?'


돌아보니 아버지가 등산에서 돌아오시는 길이었다.


"계속 따라왔는데 모르더라?"


갑자기 어머니와 아주머니의 와락 웃음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당신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게 몰래 따라오셨던 것 같다.

나중에 어머니께 들은 말을 종합하면 내 뒤에서 어머니와 아주머니를 만나고는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가 '쉿!'하시며 나를 몰래 따라가시더란다.

두 분이 그 모습을 보고 우스워서 웃으셨던 것이다.




6


"놀랐잖아요! 소리도 없이 따라오시면 어떡해요. 진짜 놀랐네.. 후우."


"너는 저기서 여기까지 얼마나 된다고 걸어나가지를 못하니?"


...라고 하시면서 껄껄 웃으신다.

아버지는 그렇게 웃으시는데 나는 정말 놀랐지만,

때가 오전이었던 터라 많이 두렵지는 않았고 대략 마음이 진정되어서

그렇다지만 썩 웃기지는 않아서 '헛헛'하게 웃었다.




7


아부지 장난에 내 명줄이 짧아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밝고 밝은 여름 오전에 행해도 무방한, 가벼운 장난이었다.

그저 내가 겁이 많아서 지레 놀랐던 것도 같다.




8


그걸 알지만 뭔가 분해서 마음으로는,

천장에 머리 꼭대기를 찧을 만큼 아버지를 화들짝 놀라게 만들고 싶다.

몇 가지 궁리도 해봤는데,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해본 결과, 못할 짓들이었다.

음... 사실 할 수는 있는데 장난 이후 혼날까 봐 겁나서 못하겠다.

대차게 혼날까 봐 못 할 짓들이랄까.




9


겁이 많아서, 아부지한테 복수도 못하는 이내 신세... 흑.

아부지, 나도 화나면 많이 무서워.. 질 껄요, 아마?




10


아부지, 놀래키는 장난은 그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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