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빠가 컴퓨터용 스피커를 사줬다.
기존의 내 스피커는 음량을 높이면 소리는 커지는데
또렷함이 부족했다. 사람 목소리도 뭉개져서 들렸다.
듣다 보면 못 알아들어서 답답하던 차에,
오빠가 선뜻 하나 사주겠다고 하더라.
2
고맙기는 한데,
'기왕 사줄 거 빨리 사줘.'
...라고 재촉할 주변머리도 없어서,
그리고 딱히 오빠가 '언제'사주겠다고 말한 것도 아니어서,
두 달 뒤의 생일에 사주려나, 하고 짐작만 하고 가만히 있었다.
3
불과 일주일 뒤인 며칠 전, 오빠가 스피커를 보냈다고 했다.
정말 상품이 왔다.
오빠는 동생한테 비싼 최고급으로 마련해 주지 못한 게 좀 마음이 쓰였는지,
"저렴한 거니까 일단 쓰다가 바꾸자."
...라고 했다.
"오빠, 나 막귀야. 비싼 거 필요 없어.
게다가 내가 쓰던 스피커보다 웬만하면 다 좋아.
설치해 보니 소리 또렷하더라, 고마워."
"다행이네. 그래도 한 1년쯤 쓰다가....."
나는 오빠의 말을 잘랐다.
"오빠! 나 이걸로 10년 쓸 거야. 스피커는 이걸로 충분해."
폰 너머의 오빠가 어쩐지 미소 짓고 있는 것 같았다.
4
우리 남매가 서로에게 선물을 주는 건, 오직 서로의 생일일 때 만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오빠는 팍팍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잊지 않고 생일 선물 용돈을 주었고,
그 용돈은 점점 커졌다.
고맙지 뭔가. 오빠는 아마도,
'동생도 컸으니 생일 금일봉도 좀 더 넉넉해야 겠다.'
...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싶다.
적지 않은 액수를 준다.
5
오빠에게서 나는 생일이 아닌데, 용돈도 받고 스피커도 받았다.
올해 내가 오빠에게 잘 했던가?
케이크 하나 만들어 준 게 다인데?
아니면 내가 귀여운 동생상에 가까워 졌나?
귀여울 나이가 아닌데?
그럼 뭐지?
뭐지?
그래, 용돈 주면서 부모님 잘 도와드리라고 하긴 했어.
나는 그 돈으로 다꾸용 스탬프를 샀는데...
음....
6
원래 사람이 사고 싶은 거 사고 그러면,
기분이 좋아진 나머지 주변 사람들, 물론 나의 경우엔 부모님께,
친절하게 대하게 되어 있는 거지.
그러니까 내가 부모님께 잘 하려면,
내 기분이 좋아질 물건을 사는 것도 방법.
오빠에게 이 이론을 통보하고 용돈 달라고 하자.
내가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오빠야, 효자 오빠야, 용돈 주라.
...라고 하면.... 안된다는 걸 안다.
7
발상이 기발, 실행 시 현실적으로 100% 확률, '욕' 먹는다.
8
새 스피커 성능 좋더라. 디자인도 괜찮다.
오라부니~ 고마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