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져니 Jan 13. 2024

자잘스토리 8 - 002 - 접촉 사고






1


전에 배움처 수업에 M 님이 지각을 하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몰던 차가 접촉 사고가 나서

처리하고 오느라 늦으셨다고 한다.

얼른 수업에 오고 싶었지만 보험 회사에 신고하고

견인차 불러서 견인해 가고... 뭔가 복잡해서 늦고 말았단다.




2


생각하기에, 사고 난 것도 기분 별로일 텐데

보험사, 견인차 부르는데 시간 지체되고...

꽝 부딪쳐서 사고가 아니라

그 이후의 처리 과정 전체가 사고인 것 같았다.

생각만 해도 정신 사나워서 나는 혼잣말로,


"쉽게 차를 옮기는 법이 없나....?"


...라고 중얼거리고 혼자 막 방법이 없나 궁리하고 상상했는데,

마침 곁에 계시던 H 님이,


"옮겼어요? 어떻게? 집어 들어서?"


H 님이 마치 내 상상하는 과정을 아시는 듯이 말씀하시길래,

당혹스럽기도 하고, 마침 상상 속에서 손가락으로 집어 들어

차를 슥 옮기는 상상을 하기도 해서, 그냥 끄덕끄덕 했다.

그랬더니 H 님과 M 님이 신이 나셨다.




3


먼저 H 님이 포문을 여셨다.


"그 차 옮겨놓은 그 도로 내가 깔았잖아."


그랬더니 M 님이 이어 받는다.


"그 도로 가로등 다 내가 꼽아놨잖아."


그러자 H 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그 차 옮기는 아스팔트 도로 주욱 내가 깔았다니까."


M 님이 받는다.


"그 차 옮기는데 가이드 경찰차 내가 보냈잖아."


그분들의 농담에 적응을 못해 약간 황당해하고 있을 때

H 님과 M 님의 농담은 이어진다.


"그 차, 산 앞 갓길까지 길 깔았잖아."


"거기까지 경찰차 10대로 호위 보냈잖아."


"그 차, 산 넘어가는데 그 산길 도로 내가 깔았잖아."


"그 산의 터널 내가 만들었잖아."


이쯤 되니 나는 지나친 과장법 농담들에 적응은 못했는데,

너무 웃기면 웃음도 안 나는 거 아는가? 

속은 되게 웃긴데, 소리 웃음은 안 나고 그저 슬며시 참여하고 싶었다.

M 님이 한번 더 쐐기를 박듯


"내가 그 산의 굴을 뚫었다니깐."


M 님은 사고 당사자인데 농담을 저렇게 열심히 하신다는 게 신기했다.

아무튼 나는 참여하고 싶어서 말했다.


"그 산을... 내가 만들었어."


농담의 릴레이가 끊겼다.




4


금요일에 부모님이 차 몰고 가시다가 접촉 사고가 났다.

다행히 다치신데 없으시고 차는 살짝 찌그러졌는데

수리 비용도 크게 들지는 않는 모양이다.

두 분이 사고 직후 모든 절차를 다 밟으시고 

집으로 귀가하셨더라.

그 과정을 나중에 얼핏 전해 들었는데,

'사고'라는 것 자체가 부정적 의미라서 그런지,

'사고 처리 과정'을 듣는 것도 기분이 좋지 않더라.

부모님이 겪으신 사고라서 더 그런가 보다.




5


근데 어쩐지 '접촉 사고'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신나게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던, 

경쾌한 H 님과 M 님이 떠오를 것 같다.

지금 위에 쓴 글도 기억에서 사라진 듯 떠오르지 않았던 일화인데,

부모님의 '접촉 사고'라는 키워드에 마주하게 되자 떠올랐지 뭔가.




6


'사고'보다 더 좋지 않은 단어는 

'사고 처리 과정'이라는 어구인 듯 하다. 

더 리얼한 사고 같달까.




7


아무튼... 부모님이 무사하셔서 다행이다.

올해 운이 좋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자잘스토리 8 - 001 - 벽두부터 걱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