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에 배움처 수업에 M 님이 지각을 하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몰던 차가 접촉 사고가 나서
처리하고 오느라 늦으셨다고 한다.
얼른 수업에 오고 싶었지만 보험 회사에 신고하고
견인차 불러서 견인해 가고... 뭔가 복잡해서 늦고 말았단다.
2
생각하기에, 사고 난 것도 기분 별로일 텐데
보험사, 견인차 부르는데 시간 지체되고...
꽝 부딪쳐서 사고가 아니라
그 이후의 처리 과정 전체가 사고인 것 같았다.
생각만 해도 정신 사나워서 나는 혼잣말로,
"쉽게 차를 옮기는 법이 없나....?"
...라고 중얼거리고 혼자 막 방법이 없나 궁리하고 상상했는데,
마침 곁에 계시던 H 님이,
"옮겼어요? 어떻게? 집어 들어서?"
H 님이 마치 내 상상하는 과정을 아시는 듯이 말씀하시길래,
당혹스럽기도 하고, 마침 상상 속에서 손가락으로 집어 들어
차를 슥 옮기는 상상을 하기도 해서, 그냥 끄덕끄덕 했다.
그랬더니 H 님과 M 님이 신이 나셨다.
3
먼저 H 님이 포문을 여셨다.
"그 차 옮겨놓은 그 도로 내가 깔았잖아."
그랬더니 M 님이 이어 받는다.
"그 도로 가로등 다 내가 꼽아놨잖아."
그러자 H 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그 차 옮기는 아스팔트 도로 주욱 내가 깔았다니까."
M 님이 받는다.
"그 차 옮기는데 가이드 경찰차 내가 보냈잖아."
그분들의 농담에 적응을 못해 약간 황당해하고 있을 때
H 님과 M 님의 농담은 이어진다.
"그 차, 산 앞 갓길까지 길 깔았잖아."
"거기까지 경찰차 10대로 호위 보냈잖아."
"그 차, 산 넘어가는데 그 산길 도로 내가 깔았잖아."
"그 산의 터널 내가 만들었잖아."
이쯤 되니 나는 지나친 과장법 농담들에 적응은 못했는데,
너무 웃기면 웃음도 안 나는 거 아는가?
속은 되게 웃긴데, 소리 웃음은 안 나고 그저 슬며시 참여하고 싶었다.
M 님이 한번 더 쐐기를 박듯
"내가 그 산의 굴을 뚫었다니깐."
M 님은 사고 당사자인데 농담을 저렇게 열심히 하신다는 게 신기했다.
아무튼 나는 참여하고 싶어서 말했다.
"그 산을... 내가 만들었어."
농담의 릴레이가 끊겼다.
4
금요일에 부모님이 차 몰고 가시다가 접촉 사고가 났다.
다행히 다치신데 없으시고 차는 살짝 찌그러졌는데
수리 비용도 크게 들지는 않는 모양이다.
두 분이 사고 직후 모든 절차를 다 밟으시고
집으로 귀가하셨더라.
그 과정을 나중에 얼핏 전해 들었는데,
'사고'라는 것 자체가 부정적 의미라서 그런지,
'사고 처리 과정'을 듣는 것도 기분이 좋지 않더라.
부모님이 겪으신 사고라서 더 그런가 보다.
5
근데 어쩐지 '접촉 사고'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신나게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던,
경쾌한 H 님과 M 님이 떠오를 것 같다.
지금 위에 쓴 글도 기억에서 사라진 듯 떠오르지 않았던 일화인데,
부모님의 '접촉 사고'라는 키워드에 마주하게 되자 떠올랐지 뭔가.
6
'사고'보다 더 좋지 않은 단어는
'사고 처리 과정'이라는 어구인 듯 하다.
더 리얼한 사고 같달까.
7
아무튼... 부모님이 무사하셔서 다행이다.
올해 운이 좋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