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살다 보면 정말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된다.
요즘엔 특별한 사람들을 만났다.
희한할 정도로 자신의 이야기에 천착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내면으로의 파고듦이 치열한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깨달은 바를 설파하려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이 느끼는 바를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마음속 부침이 심한 사람들이었고 그들 모두 공감 받기를 원했다.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공감해주지 않은 것은 나의 심술 때문이었다.
평소 나는 맞장구를 잘 쳐주는 사람이었지만, 늘 그럴 수는 없었다.
그 당시에 나는 컨디션의 기복을 겪고 있었고 도저히 즐거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야말로 공감, 위로, 격려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그것을 모르는 그들은 늘 그랬듯이 나에게 일방적인 공감만을 요청했다.
말했듯 심술이 나서 전혀 공감을 해주지 않았다.
개중에는 공감 여부를 떠나 듣고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 사람이 있었다.
얼마나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고팠으면 그럴까, 안쓰러운 마음에 들어주기는 했으나... 호응은 해주지 않았다.
남의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호응해 주기엔 내 심적 에너지가 많이 고갈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나도 힘들었다.
2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다면 나도 나의 상황을 말하고 공감을 얻어내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는 내 이야기하는 게 정말 힘들다.
어릴 적부터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익숙해져버렸기 때문에.... 듣고 있는 것은 익숙한데 막상 내 이야기를 꺼내려면 너무 민망하고, 이야기를 꺼냈다가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시작했는지 잊어버리곤 한다.
말하고 싶은 내용은 대하드라마급 길이인데 막상 말을 하려고 하면 몇 마디 나오다가 막혀버린다. 일종의 병목현상이랄까, 뭐 그렇다.
술술 말하는 게 쉽지 않아서 나는 그냥 속으로 삭힌다.
내가 그러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그토록 길게 많이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 신기하다. 지인들이 드러내놓은 이야기들은 나라면 말할 수 없는 이야기라서 더 그러하다.
나는 생각했다. 남이 어떻게 생각할지 따지지 않고 스스럼없이 자신의 결핍과 아픔을 드러내놓을 수 있는 지인들이야말로 건강한 사람이라고.
그런데 여러 번을 듣고 있다 보니 그들이 '쌩쌩'하게 건강한 사람은 아닌 듯하다.
딱 부러지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외롭고 슬픈 사람이었다. 모두 어떤 충만하고 기쁜 감정을 갈구하는,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사람치고 안 외로운 사람 없다고는 하더라.
자신의 이야기를 터놓고 말하면서 외로움을 겪는 사람과, 자신의 이야기를 속으로 삭히면서 외로운 사람, 두 부류 중에 어느 쪽이 더 힘들었을까를 생각해본다.
어느 쪽일까?
답은 후자이다. 내가 더 힘들었다니깐.
3
지인들은 토로함으로써 힘든 감정을 덜어냈지만 나는 내 감정을 삭히면서 지인들의 감정까지 떠안으며 분위기를 알아줘야 했다. 물론 호응은 안 해줬지만 속으로는 '지금 농담을 해선 안되겠구나.' 또는 '화장실 가야겠다고 말해선 안되겠구나.'하고 침묵 속의 경청을 하면서 침묵 속의 눈치를 봐야 했다.
내가 힘든 게 맞다.
하지만 지인의 입장에서는 그 자신이 힘들다고 느꼈을 테지.
컨디션이 좋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그들이 힘드니까 힘들다고 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자신의 문제가 힘들어도 남의 문제가 덜 힘들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사람은 기질이 다 다르고, 같은 어려움 앞이라도 처한 상황이 다 다르고, 그에 따라 감응하는 감정의 세기도 다 다르다.
내게는 스트레스 5만큼의 상황으로 보여도, 기질과 상황과 감응도가 달라서 지인에겐 97만큼의 힘겨움일 수도 있다.
내가 너보다 더 힘들다,라는 말을 그래서 섣불리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내 가슴의 갑갑증은 여전했지만, 천성이 '듣는 자'여서, 그리고 역지사지의 마음이 작동해버려서 나는 화도 못내고 지인들의 하소연을 들었다.
호응을 해주지 않았던 것이 나로서는 심술부리는 것이자 짜증 내는 것이었다.
어쩌면 지인들은 적극적인 호응과 위로를 안 해준 내게 섭섭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지인들은 적어도 불편했던 마음을 토로하는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든 토로했었을 것이다. 그렇게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지인들과,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진 죄로 화도 못내고 소심하게 말없이 하소연을 다 들으며, 그 힘겨움을 들으며 온 정신으로 견디어내는 나란 사람, 둘 중에 누가 더 힘겹겠는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지인들? 아니면 나?
나도 나름 힘들고 지인들도 나름 힘들 것이다.
봐라, 이 순간에도 역지사지의 마음이 발동된다. 내가 힘든 만큼 남도 힘들 수 있다는 이 이해심~. 크흑~
진짜 누가 힘들겠는가? 화도 못내고 온 정신으로 견디어내는...
누구겠는가?
그래, 나다.
크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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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라는 기계에 잘 정제된 예의라는 기름을 바르는 것은 현명하다.
(It is wise to apply the oil of refined politeness to the mechanisms of friendship.)
-콜레트(Cole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