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심약한 자의 어려움이라면 뭐가 있을까?
작게는 공포 영화 시청을 포기하고,
보통으로는 밤길이 무서워서 저녁 외출을 마다하고,
크게는 아무 일도 안 한다, 심약해서 일 생기는 게 싫기 때문에.
2
어쩌면 심약해서 크게 나쁜 것은, 나쁜 이들의 꾀임에 넘어가
좋지 않은 혹은 스스로에게 불리하게 될 일에
가담하거나 참여하게 되는 것일 게다.
사실, 그건 진정한 '심약'이 아니다.
진정 '심약'한 자는 아무 일도 만들지 않는다.
상황 하나하나, 그 자체가 스트레스여서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일에도 휩쓸리지 않고,
그냥 숨만 쉬고 가만히 있는다.
3
나도 한 '심약' 하는 사람인데, 다행히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
내가 요즘 벼르고 있다.
크게(?) 일을 저지를 거다.
근데 심약해서 당장 저지르는 것은 아니고,
한 3년에 걸쳐 추이를 봐 가며 일을 벌이기로 했다.
우유부단함보다 더 안 좋은 게 심약함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심약해서 신중해지기도 하니 때론 장점 같기도 하다.
4
일을 크으게 저지른다고 해도
아마 아무도 모를 거다.
예전에 잠시 잠깐 준비하다가 좌절한 이후,
다들 손 놨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고로, 앗싸! 아무도 몰라! 완전 마음 편해!, 라고 생각하고
스리슬쩍, 은근스리물쩍, 스르륵, 쇼로록~ 스며들듯이 젖어들듯이
자연스럽고도 끊임없이 꾸준하게 준비해나갈 생각이다.
5
심약해서 거의 아무 일도 안 벌이고 있었는데,
요즘은 더 심약해져서 스릴러 영화도 잘 못 보겠더라,
너무 조마조마 해서리, 아무튼,
정적이게 앉아서 주야장천 컴을 붙들고 하는 일이면,
예전 프리랜서 생활과 많이 다를 것도 없다.
천상, 활동적인 일은 나와 안 맞는 것 같다.
벌이려는 일들도, 움직여야 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로 나뉘는데,
최대한 안 움직이는 일 쪽으로 흘러가려고 노력 중이다.
굳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스스로 자문도 해봤다.
근데, 심약해서, 움직이면 사람들 만나야 되고 그럼 일 생겨서,
그래서 안 움직이는 쪽으로 흘러가려고 한다.
으음... 신중한 건 좋은데...
하도 일 안 벌이고 집에만 있다 보니 사람 기피증이 생긴 것도 같고... .
이러다 대인관계에 문제 생기면 어쩌나 싶은 걱정도 생기는데,
사실 인간관계가 마냥 편하다는 사람은 많이 없는 걸로 보아
사람이면 거의 대인관계가 어려운 것이 보편적인 것 같고,
외려 대인관계가 편하다는 사람은 좀 독특한(?) 사람일 경우가 많더라.
6
아... 이렇게 해서 스스로를 보편타당한 사람으로 승화시키고,
심약한 본인을 신중한 사람으로 격상시키며,
대인관계 어렵고 심약한 집순이가 찬란한 미래를 설계하면서,
일단 심기일전하기 위해 배를 채우기로 했다. 주방으로 가기 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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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는... 라면으로.
그러나... 끓이기 귀찮고 살쪄, 작은 컵 라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