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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스토리 8 - 049 - 그런 직장

by 배져니






1


지인분의 계획을 들었다.

온라인상과 오프라인상에서,

그분 자신의 재능을 골고루 분배해 사용하여

두 라인상에서 작업들을 개별적으로 진행하시겠다는 내용이다.

내가 듣고 생각해 보기에 그분의 계획대로 잘 진행되면

그분은 못해도 4가지 직업을 갖게 되시겠더라.

잠깐 짤막하게 이야기하셔서 세부계획까지 듣진 않았으나,

지인분의 경력과 경험, 취향, 꿈 등을 고루 담은

실현성 높은 직업들이고, 직업에 수행될 재능이나 실력 등도

썩 잘 갖추고 계셔서, 하시기만 하면 잘 하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게다가 근사한 일들이라, 기반만 잘 쌓으시면

폼을 내도 흠 잡히지 않을 것 같다.




2


지인분이 하도 현실성 높은 계획을 말하시니,

나는 내 계획을 되돌아보며 혼자 속으로 진지해져 버렸다.


나는... 나는?


나는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해야 할까?

현실성 있게 가치 소득 있는 노동을 하려면 어떤 쪽으로 흘러가야 하나?


내 작업물들은 취미생활의 결과이기도 하고,

또 이런저런 다른 작업들도 취미와 결부된 장기 프로젝트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오늘의 작업물은 있어도 지금의 성과는 없다.


당장 배고파 죽겠는데 장기 작업물의 성과를 기다리기엔 너무 오래 걸린다.

아사하기 십상이다.




3


왕복 출퇴근 2시간 거리쯤 되는 업체에서

(왜 2시간이냐고? 차 타면서라도 책을 읽으려고),

(환승 없는 원스톱 교통이길 원하며, 교통수단이 지하철이길 소망),

주 4일, 하루 6시간, 저질 체력이 감당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거리들만 하면 되는데, 페이는 한 달 690만 원.....

내가 실수해서 일이 잘못되면 윗사람이 다 감당하는....

말단 직원은 그냥 왕과 동격인.....

......그런 꿀 빠는 직장.... 이 없는걸 안다.


알지만... 꿈은 한 번 꿔봤다.




4


지인분의 경우엔 아마 나중에 개인사업자등록을 하셔야 할 거다.

다음 단계를 위해 이런저런 상황을 디디고 나아가시는 걸 보니,

그냥 보기가 좋다. 마음으로나마 응원을 전달하고 싶다.




5


매번 컴퓨터로만 일을 해서 나는 컴 앞 붙박이였다.

키보드 다루던 손으로 달리할 줄 아는 게 없어서 큰일이었는데,

요즘 세상에 컴을 잘 다룬다는 것도 장점인 것 같다.


올 초까지 다니던 배움처에는

수강생들의 연령분포가 다양했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꽤 괜찮은 앱 이해도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프로그래밍이나 목공예 같은 수업이었다면 달랐을 수도.

하지만 컴퓨터를 끌어안고 산 세월이 길다 보니

내가 그저 모니터를 째려보고만 있었던 건 아니구나,

내가 컴을 다룰 수 있는 게 사실이구나, 싶어서 새삼 기쁘더라.




6


지인분은 차근차근, 그렇게 내일도 경력을 쌓기 위해 고군분투하시고,

컴 붙박이 져니는 오늘은 이렇게 컴 앞에서 글을 쓰고,

내일은 컴 앞에서 웹 쇼핑할 거고,

그다음 날은 컴으로 영상 시청을 할 거고,

그다음 다음날은 뭘 할 것인지 예측 가능하신가?

좀 색다르게도,

전자책 읽을 것이다, 컴 앞에서.

그게 뭐 색다른 거냐고?

그전까지는 단말기로 읽었는데, 모니터에 뷰어 깔고 보니,

화면이 넓어서 보기 좋더라.

그래서 색다르게, 되게, 차암~ 좋던데?

아무튼 뭐, 역시, 컴 붙박이로 또 하루를 살 거다.


이러다 빌 게이츠처럼 되는 거 아냐?


(이 말은 예전 광고,

'이러다 조인성이처럼 되는 거 아냐?'의 패러디인데....

위 문장이 패러디임을 알아차리고 혹여 웃었다면?

당신은 내 연배!)..... (... 반갑소.)


아무튼 모두 빌(bill) 많이 가지시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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