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이런저런 할 일이 많이 생기고,
또 요런조런 변화가 있어서
부모님의 주전부리 마련을 소홀히 했다.
집안에 먹을거리라고는 컵라면이 유일하고,
간식이랄 것은 아~~~~무 것도 없어서
입이 무료하신 아버지께서
"왜 요즘엔 간식이 없니?"
...라고 하셔서 퍼뜩 정신을 차렸다.
2
어쩌다 보니 만드는 간식에 생크림이 꼭 필요한데,
자꾸 생크림이 품절이 되니,
판매 사이트를 실시간 지켜봐야 했고 그게 신경이 너무 쓰였다.
만들던 간식이 시원히 보관해야 하는 것들이라
여름 디저트용 느낌이 강했는데,
생크림도 잘 안 나오고 날도 추워졌겠다,
야후 잘 됐다, 그만 만들자....라고 손을 놨다.
때마침 생활이 굉장히 복잡해지고 있던 터라, 손을 놓기도 참 쉬웠다.
지금 마지막 생크림 구입일을 확인해 보니 11월 초였다.
따져보니 1달 반가량 간식 만들기에서 손을 놨지만,
또 그 사이에 감말랭이, 황금향, 귤, 햄버거, 호빵, 브리또...
원하시면 집어가셔서 드실 수 있는 것들을 꽤나 사다 놓아드렸었다.
이상한 것은 부모님 앞에 놓아드리면 잘 드시는데,
막상 당신들께서 스스로 챙겨서 드시지는 않으신다.
뭔가, 딸이 샀으니 딸 살림이니까 함부로 손 대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가 보다.
간식을 챙겨드시던 일상이 그리 길지 않으셨기에,
아마 그래서 굳이 찾지는 않으시는데, 그래서 나는 편하게 있다가,
또 가끔은 간식 생각이 나시는지 찾으시니, 나는 화들짝 놀란다.
3
브리또를 맛있어하시길래 그걸 좀 더 사놓을까 했는데,
벌써 서너 번 사다 드렸었는데,
인스턴트라 싫으신 것인지, 가격이 높아서 그러신 건지,
이젠 별로라고 하신다. 질리셨나?
시름시름 골똘히 고민하느라 아플 지경이었다.
장고 끝에 웹사이트에서 떡을 주문했다.
요즘은 낱개 포장으로 깔끔하게 나오더라.
괜찮겠지, 두 분 다 좋아하실만한 간식이니까...
내 몫으로는 음료수를 한 박스 사들이고 싶었는데,
잔고가 모자라서 주문 못했다.... 크흑...
딸내미가 자기 먹을 거 포기하고 부모님을 위해 떡을 주문하는 내용,
그런 효도 효행 동화를 만드는 건 어떻겠냐고 동화 작가분들께 권해볼까?
그런 거 안되면, 나 효녀문 세워주라, 그게 안되면 음료 쿠폰이라도...
...흥... 그거 없어도 돼, 필요 없어. 난 원하지 않아.
오직 부모님의 체중 증가와 건강만을 위할 뿐....
캬아... 음료 쿠폰 포기하면서 부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는 효녀의 이야기...
딱인데, 효녀문 세울만 한데... 소문 안 나나?
4
집안 가사일에 관여하는 나,
작업물에 열중하는 나, 작은 사회에 참여하는 나...
크게는 그렇게 3가지로 나뉘고, 잘게 나누면 한껏 많이 나뉘겠지만,
아무튼 일단 세 가지 입장에서의 나는 시간분배에 실패하고 있다.
올 초부터 시간분배가 잘 안된다 생각했는데 현재 12월,
결국 한 해 내내 시간분배에 실패한 것 같다.
그중 억울하게 뼈아픈 시간들은,
내 방에 에어컨이 없어서 한 3개월을 허송세월한 것이다.
으... 더위가 살인적이었지.
너무 더워서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력함이 징그러웠다.
내년에는 에어컨을 꼭 설치해야겠다.
5
그리고 부모님 체중이 빠지셔서 마음이 정말 좋지 않다.
다시 간식을 정성 들여 만들어 봐야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