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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스토리 8 - 050 - 시간 분배

by 배져니






1


요즘 이런저런 할 일이 많이 생기고,

또 요런조런 변화가 있어서

부모님의 주전부리 마련을 소홀히 했다.


집안에 먹을거리라고는 컵라면이 유일하고,

간식이랄 것은 아~~~~무 것도 없어서

입이 무료하신 아버지께서


"왜 요즘엔 간식이 없니?"


...라고 하셔서 퍼뜩 정신을 차렸다.




2


어쩌다 보니 만드는 간식에 생크림이 꼭 필요한데,

자꾸 생크림이 품절이 되니,

판매 사이트를 실시간 지켜봐야 했고 그게 신경이 너무 쓰였다.

만들던 간식이 시원히 보관해야 하는 것들이라

여름 디저트용 느낌이 강했는데,

생크림도 잘 안 나오고 날도 추워졌겠다,

야후 잘 됐다, 그만 만들자....라고 손을 놨다.

때마침 생활이 굉장히 복잡해지고 있던 터라, 손을 놓기도 참 쉬웠다.


지금 마지막 생크림 구입일을 확인해 보니 11월 초였다.

따져보니 1달 반가량 간식 만들기에서 손을 놨지만,

또 그 사이에 감말랭이, 황금향, 귤, 햄버거, 호빵, 브리또...

원하시면 집어가셔서 드실 수 있는 것들을 꽤나 사다 놓아드렸었다.


이상한 것은 부모님 앞에 놓아드리면 잘 드시는데,

막상 당신들께서 스스로 챙겨서 드시지는 않으신다.

뭔가, 딸이 샀으니 딸 살림이니까 함부로 손 대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가 보다.


간식을 챙겨드시던 일상이 그리 길지 않으셨기에,

아마 그래서 굳이 찾지는 않으시는데, 그래서 나는 편하게 있다가,

또 가끔은 간식 생각이 나시는지 찾으시니, 나는 화들짝 놀란다.




3


브리또를 맛있어하시길래 그걸 좀 더 사놓을까 했는데,

벌써 서너 번 사다 드렸었는데,

인스턴트라 싫으신 것인지, 가격이 높아서 그러신 건지,

이젠 별로라고 하신다. 질리셨나?

시름시름 골똘히 고민하느라 아플 지경이었다.

장고 끝에 웹사이트에서 떡을 주문했다.

요즘은 낱개 포장으로 깔끔하게 나오더라.

괜찮겠지, 두 분 다 좋아하실만한 간식이니까...


내 몫으로는 음료수를 한 박스 사들이고 싶었는데,

잔고가 모자라서 주문 못했다.... 크흑...


딸내미가 자기 먹을 거 포기하고 부모님을 위해 떡을 주문하는 내용,

그런 효도 효행 동화를 만드는 건 어떻겠냐고 동화 작가분들께 권해볼까?

그런 거 안되면, 나 효녀문 세워주라, 그게 안되면 음료 쿠폰이라도...

...흥... 그거 없어도 돼, 필요 없어. 난 원하지 않아.

오직 부모님의 체중 증가와 건강만을 위할 뿐....


캬아... 음료 쿠폰 포기하면서 부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는 효녀의 이야기...

딱인데, 효녀문 세울만 한데... 소문 안 나나?




4


집안 가사일에 관여하는 나,

작업물에 열중하는 나, 작은 사회에 참여하는 나...

크게는 그렇게 3가지로 나뉘고, 잘게 나누면 한껏 많이 나뉘겠지만,

아무튼 일단 세 가지 입장에서의 나는 시간분배에 실패하고 있다.


올 초부터 시간분배가 잘 안된다 생각했는데 현재 12월,

결국 한 해 내내 시간분배에 실패한 것 같다.

그중 억울하게 뼈아픈 시간들은,

내 방에 에어컨이 없어서 한 3개월을 허송세월한 것이다.


으... 더위가 살인적이었지.

너무 더워서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력함이 징그러웠다.

내년에는 에어컨을 꼭 설치해야겠다.




5


그리고 부모님 체중이 빠지셔서 마음이 정말 좋지 않다.

다시 간식을 정성 들여 만들어 봐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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