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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스토리 8 - 073 - AI 검색보다 더

by 배져니






1


어머니께서 수영복이 새로 필요하다고 하셨다.

며칠 전에 어머니와 컴퓨터 앞에 나란히 앉아서

웹 쇼핑으로 수영복을 검색했지만,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등 라인이 취향에 맞지 않고,

두 가지가 다 마음에 흡족하면 사이즈가 없고....

가격까지 따져볼 여지도 없이,

그 세 가지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웹 쇼핑을 하다가 지쳐서, 그날은 선택을 하지 못했다.




2


어머니께서는,


"니가 좀 알아서 주문해 봐."


...라고 하시고 홀로 홀가분하게 컴퓨터 앞을 떠나셨다.


이렇게 떠넘기시다니...

뭐, 오늘 시간을 쪼개어 폭풍 수영복 검색을 했다.

약 2시간을 할애해서 사이즈, 브랜드를 조건 검색하여 고르고 골랐다.

그런 후 조건에 맞는 6가지 디자인을 골라놓고

거실의 어머니를 곁에 오시게 하여,


"이 중에 선택해 보세요."


...라고... 나름 자신 있게! 말씀드렸다.

어머니의 취향을 내가 분명히 알고 있고,

거기에 범상치 않은(?) 내 안목으로 골랐으니


'여섯 벌 중에 한 벌은 당연히, 분명히, 필시! 선택하시겠지.'


...라는 마음이었다.

어머니는 여섯 벌을 다 보시고는... 나를 배려하셔서 말씀하셨다.


"다른 것 좀 보자, 딴 거 사진 한번 찾아봐."


...라고... 그런 말씀인즉,


'마음에 안 든다, 다른 걸로 고르고 싶구나.'


...라는 의미이신 것이다.

적잖이 상처(?) 받았다.

살짝 화가 나는 나머지,


"다른 거 봐도 없어요.

AI 검색보다 더 섬세하게 다 따져가며 봤다니깐요.

고급인력으로 내가 다 검수했는데! 아웅... 봐 보셔요!"


...라고 스리슬쩍 언성을 높였다가 스리슬쩍 웹 쇼핑 참을 열어드렸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선택할 수 없었다.

디자인에서 고를만한 상품들은 부수적인 다른 조건으로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으셨고,

그 디자인은 내가 이미 정확히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 하시지 않을

그 조건 때문에 제외했던 제품이었으니까.


내가 어무니 취향을 안다니깐!




3


그러나 한 가지 몰랐던 사실을 알았다.


디자인이며 등 라인이며 사이즈며 가격까지 다 괜찮았는데,

색상이 조금 밝은 수영복이 있었다.

예쁘고 화사해서 추천드렸는데, 어머니는 애매하게 주저하셨다.

색이 너무 밝아서 햇빛에 탄 당신의 피부색이

도드라질 것 같다고 말이시다.


거기에다 혹시 반품이라도 하게 되면, 무료반품이 안되는 제품이어서,

따로 판매자에게 연락해야 하고, 또 추가 배송비 발생,

번잡해져서 이래저래 그냥 번거롭지 않게 입을 수 있는 디자인과

브랜드를 선택하시려는 것 같았다.

아깐 그 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가,


"물에 젖으면 수영복 색이 좀 짙어지니까

괜찮을 수도 있긴 한데...."


...라고 하셨던 미련 어린 말씀이 번득 상기되자,

이건... 주문을 해야 하는 거였다.


어머니도 밝고 고운 색상을 입어보시고 싶으면,

입어 볼 기회 정도는 드려보고 싶다.


내가 집순이라, 매장까지 같이 가서 봐드리지는 못해도

대신 주문해서, 배달되면 착용해 보시게 하고,

보통 그 정도에서 어울림 정도가 판별이 될 테니,

어울리면 그건, 어머니의 수영복이고,

안 어울리면 나는 반품 신청서 작성해야지.

그 정도는 해야 어무니가


'딸내미한테 수영복 골라달라고 할 만 하구나.'


...라고 생각하시겠지.




4


수영복을 주문했다.

착한 딸이라고 소문났으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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