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머니께서 수영복이 새로 필요하다고 하셨다.
며칠 전에 어머니와 컴퓨터 앞에 나란히 앉아서
웹 쇼핑으로 수영복을 검색했지만,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등 라인이 취향에 맞지 않고,
두 가지가 다 마음에 흡족하면 사이즈가 없고....
가격까지 따져볼 여지도 없이,
그 세 가지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웹 쇼핑을 하다가 지쳐서, 그날은 선택을 하지 못했다.
2
어머니께서는,
"니가 좀 알아서 주문해 봐."
...라고 하시고 홀로 홀가분하게 컴퓨터 앞을 떠나셨다.
이렇게 떠넘기시다니...
뭐, 오늘 시간을 쪼개어 폭풍 수영복 검색을 했다.
약 2시간을 할애해서 사이즈, 브랜드를 조건 검색하여 고르고 골랐다.
그런 후 조건에 맞는 6가지 디자인을 골라놓고
거실의 어머니를 곁에 오시게 하여,
"이 중에 선택해 보세요."
...라고... 나름 자신 있게! 말씀드렸다.
어머니의 취향을 내가 분명히 알고 있고,
거기에 범상치 않은(?) 내 안목으로 골랐으니
'여섯 벌 중에 한 벌은 당연히, 분명히, 필시! 선택하시겠지.'
...라는 마음이었다.
어머니는 여섯 벌을 다 보시고는... 나를 배려하셔서 말씀하셨다.
"다른 것 좀 보자, 딴 거 사진 한번 찾아봐."
...라고... 그런 말씀인즉,
'마음에 안 든다, 다른 걸로 고르고 싶구나.'
...라는 의미이신 것이다.
적잖이 상처(?) 받았다.
살짝 화가 나는 나머지,
"다른 거 봐도 없어요.
AI 검색보다 더 섬세하게 다 따져가며 봤다니깐요.
고급인력으로 내가 다 검수했는데! 아웅... 봐 보셔요!"
...라고 스리슬쩍 언성을 높였다가 스리슬쩍 웹 쇼핑 참을 열어드렸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선택할 수 없었다.
디자인에서 고를만한 상품들은 부수적인 다른 조건으로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으셨고,
그 디자인은 내가 이미 정확히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 하시지 않을
그 조건 때문에 제외했던 제품이었으니까.
내가 어무니 취향을 안다니깐!
3
그러나 한 가지 몰랐던 사실을 알았다.
디자인이며 등 라인이며 사이즈며 가격까지 다 괜찮았는데,
색상이 조금 밝은 수영복이 있었다.
예쁘고 화사해서 추천드렸는데, 어머니는 애매하게 주저하셨다.
색이 너무 밝아서 햇빛에 탄 당신의 피부색이
도드라질 것 같다고 말이시다.
거기에다 혹시 반품이라도 하게 되면, 무료반품이 안되는 제품이어서,
따로 판매자에게 연락해야 하고, 또 추가 배송비 발생,
번잡해져서 이래저래 그냥 번거롭지 않게 입을 수 있는 디자인과
브랜드를 선택하시려는 것 같았다.
아깐 그 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가,
"물에 젖으면 수영복 색이 좀 짙어지니까
괜찮을 수도 있긴 한데...."
...라고 하셨던 미련 어린 말씀이 번득 상기되자,
이건... 주문을 해야 하는 거였다.
어머니도 밝고 고운 색상을 입어보시고 싶으면,
입어 볼 기회 정도는 드려보고 싶다.
내가 집순이라, 매장까지 같이 가서 봐드리지는 못해도
대신 주문해서, 배달되면 착용해 보시게 하고,
보통 그 정도에서 어울림 정도가 판별이 될 테니,
어울리면 그건, 어머니의 수영복이고,
안 어울리면 나는 반품 신청서 작성해야지.
그 정도는 해야 어무니가
'딸내미한테 수영복 골라달라고 할 만 하구나.'
...라고 생각하시겠지.
4
수영복을 주문했다.
착한 딸이라고 소문났으면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