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전에 누군가가 그랬다.
"져니씨는 특별한 것 같아요."
딱히 별 감흥이 없던 나는 화제를 돌리고자
시큰둥하게 말을 돌렸다.
"설마요. 저는 제가 세상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거의 모든 면에서 평범해서요.
근데 평범한 게 모나지 않았다는 의미와 통하는 게 있는 거 같아서,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누군가는 말했다.
"세상 사람 뜯어보면 다 특이하고 이상하고 별난데, 평범한 거?
평범한 가정, 평범한 경제력, 평범한 성적?
한두 개 평범한 거는 그런가 보다 하지만, 다 평범한 수준이라면,
그건 정말 특별한 거예요. 평범하게 사는 게 얼마나 어렵게요."
...라는 이상한 논리로 나를 '특별'하다고 말해주었다.
2
사실 특별하다는 말에 내가 시큰둥했던 것은
화자가 날 위로하려 했기 때문이다.
직장 내에서 맡은 일은 잘 해내는데,
어쩐지 자꾸 치이고 우울해하는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 것이다.
그때의 나는 자긍심이 너무 얕았고,
그런데도 무슨 자존심이었는지, 위로의 말에도 비딱하게 마음이 상했다.
아마도 나는,
'내가 위로받을 만큼 처량하지는 않아. 평범하다니깐.
나의 평범은 만사가 다 그러하다는 의미라서,
처량하게 위로받는 처지의 사람은 아니라는 뜻인데,
그걸 모르는 건가? 왜 위로를 하는 거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출처를 알 수 없는 삐딱한 근성이었다.
평범을 자처하면서, 특별하게 훌륭하지는 않지만,
특별하게 처량한 처지도 되지 않는다는, 이상한 근성.
'평범해서 외려 특별하다.'는 이상한 말은 위로의 숭고함이라도 있지만,
평범해서, '특별하지 않지만, 처량하지도 않다.'는 말은
'어쨌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된다.'
...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게, 안주 지향적인,
참 별로인 이상한 아무 말이었던 것이다.
3
'왕년의 내 인생 이야기를 책으로 쓰자면 소설책 10권은 나올 거다.'
...라고 말씀하시는 어른들이 계셨었다.
그런 말을 하셨던 어른들은 왠지 다들 뭔가, 그 지역에는 뭔가 족적을 남기시는,
아주 대단한 분들이 아닐까 생각도 했고,
한편으로는 허풍이 아닐까도 생각했었다.
나도 이제 점점 그 어른들의 나이 즈음이 되어간다.
허비했다고 할 만큼 어지럽게 제자리에서 돌던 나날이 길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살아내고 나니, 집순이라지만 나도 인생 이야기가 쌓였다.
그 이야기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10권 분량은 아니더라도,
소설의 형식은 갖출 수 있겠고, 상상력을 조금 가미하면,
SF 소설도 되겠더라.
'에라이, 이럴 바엔 아주 SF, 심령, 추리, 로드 무비 소설을 쓸까?'
...라고도 생각했는데.... 음.
위 문장에서 나의 농담을 알아차리셨는가?
내 인생 이야기에 상상력 가미하여, SF, 심령, 추리 소설 쓰기까지는 가능하지만,
당최 로드 무비 소설은 어렵다, 거의 붙박이 집순이 인생이었기에 말이다.
4
예전 어른들의 '왕년의 내 이야기.. 소설책.... 10권이다.'라는 말씀이
거의 모두 사실이라는 걸 알았다.
인생은 켜켜이 쌓이면 독특한 질감이 생기는 것 같다.
그건 평범함이 쌓여서 특별함이 되는 화학작용처럼 보인다.
촉매는 따로 없지만, 굳이 따진다면,
그저 숨이 붙어서 삶을 사는 자체가 촉매작용이 아닐까.
결국 살아내면, 사람은 특별해진다.
5
이변이 없다면, 조만간 지인을 만나게 될 테고,
아마도 그 만남으로 나는 굉장히 색다른 켜가 쌓일 것 같다.
갑자기 몇 년 만에 두서너 명을 마주할 생각을 하니
지인이어도 낯이 가려질 것 같아서 벌써 긴장감으로 배가 아파온다.
살아내어 촉매작용되어 화학작용 일어났는데,
그리하여 특별함이 만들어지는 것 같긴 한데....
'낯가리고 장트러블 자주 오는' 특별함은...?
...음... 조금 곤란하지 아니한가...
6
살아낼수록 인생은 특별해지는데,
몸뚱이는 허술해지니...
살아낸다는 건, 일장일단인가 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