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잘스토리 8 - 075 - 비스듬한 발자욱

by 배져니






1


올해는 뭔가, 도통 쓰거나 적기를 하지 않고 있다.

내 작업과 취미의 태반이 쓰고 적어야 하는 일인데,

하다못해 다이어리 쓰는 것도 하지 않으니,

스스로도 어리둥절하고 있다.

대체 왜?


이내 알았다,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다는걸.




2


커다란 변화를 앞둔 상황인 것 같다.

얼토당토않은 일을 계획하고, 수반되는 셈도 치르고,

부수적인 일도 먼저 해버렸다.

기대되는 모든 일이 허무하게 스러져버린다면,

나는 백년의 고독 속으로 침잠할 터이다.

그러나 예상하는 일이 단 한 가지라도 성사된다면,

나는 살아가는 방향의 변곡점을 맞이한 거라고 생각할 것 같다.


기존의 내 상식으로 볼 때 너무나 터무니없는 일을 벌였지만,

후회는 없다, 해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3


문제는 내가 그 일을 벌이고 나서, 너무 신경이 쓰이는 나머지,

일상이 폭삭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분명 일삼 분기까지는 옴짝옴짝 글을 썼는데,

그 이후....


'에라이 모르겠다,

어차피 집중도 안 되는 거 그냥 놀자, 제껴버려!'


...라고 하며 작업들을 던져버린 것이다.

소심해서, 뭘 막 다 놔버리고 하는 성격이 아니다.

혹여 그랬다가 망하면 회생불능일까 봐 평소엔 잘 놓아버리지도 못하는데,

이번에는 정말 화끈(?) 하게 확 끈을 놓았다.

그리고 그렇게 놀아본 결과...




4


되게 몸 편하고 좋다.

의식주가 먹고살 만할 정도라서,

좀 놀아도 지붕이 내려앉고, 바닥이 꺼지고, 그러지는 않는다.

빤히 알면서도, 노는 게 죄악이고, 사람은 아무쪼록 일해야 하고,

안식년을 맞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유흥이 아닌

재정비를 하며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 벌이고, 너무 신경이 쓰이는 나머지,


'에라이, 그 일 끝날 때까지 다른 일은 놓아버려.'


...라며, 거의 모든 걸 팽개치다시피 놀아버리니...

아웅~ 몸 편해!


다이어리를 시시각각 안 쓰니까, 시간상 여유가 많아지고,

취미로 영어 문제집 푸는 게 있지만, 놀자고 작정했으니까,


'에라이, 그거 취미를 빙자한 공부 아니냐, 제껴.'


...라고 책을 쳐다보지 않았더니,

아웅~ 세상 몸 편해!


한편, 생각해 보니, 영어 독해 문제집 푸는 것이나 그 이외의 각종 쓰기나

취미 활동이... 어쩐지 공부하는 성향의 것이 많은 걸 느꼈다.


'즐겨야 하는 취미가 왜 자기 계발적이냐! 다 제껴!'




5


계획 하나 실행했던 것이,

어쩐지 많은 걸 달라지게 하고 있다.


나는 실행 이후의 변화를 기대했는데,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너무 극심한 변화를 겪는 게 당황스럽다.

놀며 지냈다지만, 몸이 편했지,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어쩌면 마음이 편치 않아서 놀았다고 해도 맞는 말일 것이다.


새삼, 사람 일을 알 수 없고, 삼라만상은 변화무쌍하며

그중 사람의 마음은 카오스 그 자체로구나, 싶다.

카오스 같은 마음이 내 가슴에 자리하고 있다.

혼란스럽고 어지럽다.




6


변함없이 늘 상식선상의 삶을 살기보다,

가끔은 선을 살짝 비스듬히 밟아보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건 '비상식적'에 가까울 수 있으나

올바름에 반하는 삶은, 당연히, 아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최대치의 숙고 끝에, 비스듬한 발을 내디뎌봤다.

일과 상황이 마무리되려면 아직도 한참 있어야 하지만,

아무튼 준비하는 내내, 고뇌하고 번뇌하는 마음의 고단함으로

색다른 종류의 심적 맷집이 만들어지는 중인 것만 같다.




7


디딘 발자국이 최종 다다르는 곳이 어디일지 궁금하다.

사람 일을 알 수 없고, 만물은 변화무쌍, 마음은 혼돈,

실행이 진행되며 답이 나오면 다행이리라.

이제는 그저 기원한다.

굿 럭 투미.




-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잘스토리 8 - 074 - 켜켜이 쌓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