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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스토리 8 - 076 - 마음이 달싹달싹

by 배져니







1


원두 주문처를 바꿨다.


이전 주문처는 가성비가 좋은 곳이었다.

1kg을 구매해도 가격이 높지 않은 데다가,

그런데도 포장 재질은 예쁘고 좋아 보여서 선택했다.

배송된 원두를 모카포트로 추출해서 마셔봤는데,

나쁘지는 않았지만 썩 좋다고 할 만한 점을 못 느꼈다.

두 번 구입해 봤는데, 두 번 다 그런 느낌이라 좀 그랬다.




2


사실 그닥 커피의 향이나 산미, 바디감 등을 크게 따지지 않는다.

보통의 커피라면 마셔서 정신이 쨍한 느낌이 나기 때문에,

커피의 효용으로 정신이 쨍한 그 느낌이면, 그거면 나는 족했다.


그런데 다른 요인이 있었는지 잘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커피를 마셨는데, 잠이 너무 와서,

심지어 푹 자고 일어나서 커피를 마셨는데, 또 잠이 드는 지경이어서,

내가 구입한 게 커피 원두인지, 아니면 커피콩 모양의 수면제인지

도통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커피콩 구입처를 바꿨다.

어느 영상에서, 단 몇 그램의 원두가 몇십만 원 가격인데,

그렇게 비싼데도 그걸 소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봤다.

심지어 루왁이 아닌데도 그렇게 비쌌다.


루왁이라면 별로 부럽지 않았을 것 같다.

사향고양이와 그 녀석의 똥꼬가 불쌍해서

루왁은 내 돈 들여 사고 싶은 마음이 없다.

요즘은 커피를 색다르게 발효하는 방법이 많이 생겨서

그 방법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더라.

맛과 향에 차별점이 생겨서 값어치가 높은가 싶다.


아무튼 나도 원두 입문 시기에는 향과 맛에 꽤 신경을 쓰며

한 달에 네 가지 종류의 원두를 구입, 추출해 마셨었다.

입문차라 열의가 가득, 마치 커피 소믈리에라도 될 듯이

부지런히 드립도 하고 추출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열의가 시들어서

큰 업체에서 한꺼번에 로스팅하고 소비기한도 분명치 않은,

그러니까 싼, 그런 원두를 구입하면서부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깨달았지만,

그 이전에 내가 커피를 추출할 때면, 어머니께서


"커피향이 참 좋다. 고소하다."


"커피향이 꽃향기 같네.."


...라고 코멘트를 하셨는데,

어느 순간 어머니가 별말씀을 안 하시는 것이었다.


로스팅을 강하게 한 커피에는 고소하다,

산미와 향이 강한 커피에는 꽃향기가 난다,라고

마치 그 커피콩의 특성을 아시는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구입처 바꿨다는 말도 안 했는데, 그때부터 커피를 추출해도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3


이전 구입처에서 1kg, 1종류를 구입할 때보다,

이번 새 구입처에서 3종류를 900g 구입할 때

비용이 2배 이상이 들었다.

원두가 도착했으나 슬픈 상황에 빠져있다.

이전에 구입했던 1kg짜리 원두가 아직 다 소진이 안 된 상태이다.

마음 같아서는 탈취제로 쓰고 싶은데,

쩝... 그럼 왠지 하락된 가치로 쓰게 되는 느낌이고,

그럴 경우 어쩐지 본전 생각이 나서 아까울 것 같다... 흠.

아무튼 오늘도 수면제 같은 커피를 추출해마셨다.

앞으로 5일 정도 더 마시면 원두가 바닥날 것 같다.




4


지금 내 안에 팽배한 감정은,

오랜만에 새로운 커피향과 맛을 느낄 수 있으려나, 하는 설렘과 더불어

어머니가 과연 새 커피향에 코멘트를 말씀하실까, 하는 기대감이다.


어쩐지, 내 혀 속에 미각보다,

어머니의 후각이 커피의 판별을 더 잘하시는 것 같달까.


다시 말하지만 슬픈 상황이다, 앞으로 5일은 더 탈취제를 마셔야...

아니 아니, 수면제를.. 아니 아니... 잠 오는 커피를 마셔야 한다.


새로 구입한 원두 콩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마음이 달싹달싹 움직인다.

맛있어야 할 텐데...

분명히... 맛있어야만 한다, 비싼 거니까.

안 그럼...독땅해!


내일부터 카운트 시작한다. 5부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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