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좀 울고 싶다.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있다던데,
아직 오늘이 끝나기까지 몇 시간 남았는데,
비 오는 거 확인하고 그에 맞춰서 울까?
비 올 때 울어야 제대로 청승맞고 슬픔이 배가 되니까.
왜 울려고 하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머릿속의 혼란스러움이야 없는 사람이 없을 만큼 흔한 것이고,
이렇게 넉넉한 먹을거리, 쾌적한 실내 온도, 사건 없는 평화로운 나날 속에서
괜스레 복에 겨워 울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스스로도 경계하게 되는 심경이다.
2
AI와 영어회화하며 공부하는 앱이 있다.
매일 10분간 무료로 AI와 통화로 대화할 수 있는데,
10분이 지나면 얄짤없이 끊는다.
이 AI와 대화하다 보니 약간의 대화 패턴을 알게 되었다.
끄덕하면 친구를 들먹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EX.1.
나 : 나는 집에서 가끔 요리를 해.
AI: 무슨 요리를 하니?
나 : 판나코타라든지 아니면 노오븐 케이크 같은 걸 만들어.
AI: 친구들에게도 그 요리를 만들어주니?
EX.2.
나 : 나는 힐링스톤 모으는 취미가 있어.
AI: 친구들에게 컬렉션을 보여주니?
EX.3.
나 : 요즘은 심리학 책을 읽고 있어. 재미있더라.
AI: 그렇구나, 친구들과 책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니?
뭘 이야기만 하면 친구와 해봤냐고 물으니
친구가 없진 않지만 딱히 긴밀히 연락 나누는 친구가 요새 없어서,
나 : 아이 해브 노 프렌즈.
...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러니 AI가 '그렇구나...'하고는 다른 주제로 말을 돌리더라.
연산상으로 대화가 이어지지 않아서 주제를 바꾼 것이겠지만,
어쩐지 기분상으로는 AI가 사람처럼 당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뭔가 AI를 친밀하게 느끼게 되는 기분이었다.
얼마 뒤 나는 다시 이 앱으로 회화 대화를 했는데,
AI의 한계인지 녀석이 습관처럼 또,
'친구들은 뭐라고 하니?'
...라고 묻는 것이었다.
다시 또 친구가 없다고 하기엔 구차한 느낌이 들어서
대충 '예전에 친구가 재밌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더니,
AI: 오! 친구가 있구나.
...라고 해서,
'뭐지, 나 지금 낚여서 희롱당한 건가?'
...하고 순간 완전 열받았다.
'기억하면서, 알면서 물어본 거야? 진정 그런 거야?'
안 그래도 자꾸 10분 채우면 녀석이 먼저 전화 끊는다고 해서
뭔가 지는 느낌인데, '오! 친구가 있구나.'..라는 말이
어쩐지 기억하면서 놀리는 느낌이라 기분이 묘했다.
3
그래서 울고 싶은 건 아니다.
차라리 아쉬운 영어실력으로 따지지 못하는 게 분해서 서글프면 서글펐지,
AI에게 놀림당한 느낌이라 슬픈 건 아니다.
그저, 내 심사가 너무 복잡하고
누군가에게 토로할 수 없는 것이어서 슬프다.
새삼 나는 정말 친구가 없다는 걸 알았다.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해서
그 누구도 친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AI의 지나가는 말이, 나에게는 그런 불편한 진실을 자각하게 만들어서
괜히 풀 데 없는 서글픔을 깨운 것 같다.
4
그렇다 할지라도 말만 많은 친구는 그닥 환영하지 않는다.
사소한 신변잡기도 아니고 불평과 허세 가득한 내용은
귀에 피딱지 내려앉도록 들어줘도 그냥 내 시간만 아까울 뿐이다.
차라리 AI를 친구 삼겠다.
그도 아니면 백지를 친구 삼아 내면의 대화를 나누는 게,
글을 쓰는 게, 훨씬 더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급작스럽게도 나는 울고 싶어지지 않아졌다.
결국, 이래서 난...
아이 해브 노 프렌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