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사람이 겪는 혼란함을 지켜보는 느낌이 이럴까 싶다.
저 사람이 왜 그러는지 알 것 같고,
저 사람의 기분이 어떠한지 지독히도 알겠고,
주변의 그 누구도 저 사람을 다독이지 못하고 있음을 알겠다.
입장도 이해하고, 상황도 납득하며, 심경도 공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누구도 촌철살인의 조언과 정서를 꿰뚫는 위로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건 그 사람 주변에 의외로 마음 두게끔 여지를 주는 사람이 없어서일 것이다.
2
자유의지가 꺾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인들 안 그러랴?'라고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꺾이는지 아닌지 모르는 사람이 허다하고
꺾여도 그냥 사는 거지, 하고 모른 척 사는 사람도 꽤나 있다.
그럴 처지가 아니어서, 변동성 높은 현실을 고려하여,
답답해도 인내하라고 강요받는 위상의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 위상이 있는 만큼 감수는 하겠지만,
내내 부당함을 느끼고 체증 같은 갑갑함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해결책은 해소와 승화밖에 없다고 본다.
3
위험을 감수하고 정면돌파하여 강경책으로 해소하거나,
아니면 인내하면서 문제에 대한, 온건한 차선책을 펼쳐 해소하거나이다.
그런 다음엔 취미이다.
문학, 예술, 운동으로 해소하는 건 건전하다.
더욱이 창조적인 행위면 더욱 효과적인데다가
그건 꺾인 상처에 대한 치유도 되면서
승화가 이뤄지는 현장이 될 것이리라.
4
돌아가는 상황도 알고, 입장도 인지하고 있는데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의지가 꺾여서 화가 나고 분한데,
화나고 분한 감정은 아는데,
그 감정을 어떻게 다독여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은 '주제 파악해라.'라는 농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의 흐름을 읽고 자신에게 맞는 해소법을 알아내라.'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게 더 합리적이고 합당하겠다.
5
건강한 의지가 꺾여본 나로서는,
화가 많이 나서 어쩔 줄 몰랐던 나로서는,
방법을 하나 찾았다.
지인에게 시도 때도 없이
"야" 하고 냅다 메시지를 날린다.
그리고 콩볶는 소리가 날 듯한 타이핑으로
와 다다다! 글씨들을 와 다다다! 들입다 날린다.
참으로 슬픈 일은, '강경책, 온건책' 다 실패하고
'취미로 해소', '창의적 승화'법을 알면서 못하고...
그저 "야!" 하고 냅다 자판을 휘갈기는 것이다.
야,에게 미안하다.
글자 공격해서...
근데 왜 답이 없니? 안 보는 건 아니겠지?
말로만 듣던 '읽씹'인가?
하아... 내가 읽씹당할 문장력은 아닌데...
흠흠... 나는 나에게 맞는 해소법은 찾았다.
취미로 해소.... 글쓰기... 구체적으로 메시지 날리기....
그러나 승화시키지는 못하고 되레 잃었으니....
야,에게 읽씹....
'읽씹'에서 쌍시옷이 들어가니 뭔가 상스럽게 격하당했다는 느낌이....
좀 속상한걸.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 의지가 꺾여서 속상한 이들에게,
스스로의 마음을 읽어 내려가는 시간을 보내라고 권하고 싶으며,
신뢰 가는 지인에게 토로하거나 아니면 일기를 써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듣고 있기보다
'나 스스로를 알고 있나?'라고 셀프 질문하기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