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 이야기

by 배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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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머니께서 운동하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길이었다. 길 저쪽에서 뭔가가 반짝이는 게 보이셨단다. 얼핏 보니, 초등학교 앞이라서, 여자아이들이 끼고 다니는 조잡한 반짝이 반지인가 보다 생각하셨다. 그렇게 생각하시면서도 워낙 반짝이는지라 한번 찬찬히 살펴보셨다. 그런데 그게 초등생의 반지라고 하기엔 사이즈가 컸다.

주인 없는 반지였기에 어머니는 가져오셨다. 집에 돌아오신 어머니는 "반지 안에 글씨가 쓰여있는데 뭐라고 써있니?"라고 내게 물으셨다. 과연 뭐라고 쓰여있었다. 사람의 이니셜은 아니었다. 어느 액세서리 회사의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반지가 고급스러워 보였으나 또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은 아니었다. 그냥 큐빅이 잔뜩 박힌 링이었는데 생각보다는 고급스럽게 보이더라.

슬며시 손에 끼워봤다.





2


액세서리에 대해 알만한 지인에게 습득한 반지를 보여주며 얼마 정도 되는 물건이냐고 물었더니,


"은이나 금이었으면 5만 원에서 10만 원 하겠지만 그냥 금속이라면 원가는 1만 원이요."

"도매로 받아오면?"


"1만 5천 원이요."


"그렇게 싸? 그럼 팔 때는 얼마에 팔아?"


"붙이기 나름이에요. 인터넷에서도 팔려면 택배비도 있고 하니까, 못해도 4만 원쯤에는 팔아야 해요. 일반 매장에서는 좀 더 붙이기도 하고요."


"꽤 예쁜데... 원가가 설마 1만 원 밖에 안 하려고?"


"큐빅이 많이 붙어있어도, 사실 큐빅 값이 얼마 안 해요."






3


대체 초등학교 근처에서 이 반지가 왜 나타났을까?

어느 초등생이 고등학생 언니나 엄마의 반짝이는 반지를 몰래 가지고 나왔다가 흘려서 잃어버린 것일까?

그럼 이 순간 그 '어느 초등생'은 언니나 엄마에게 욕먹어가며 혼나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어느 아가씨가 바쁜 아침 출근길에 급하게 핸드로션을 바르며 걸어가느라 잠깐 빼놓았던 반지를 부지불식간에 떨어뜨린 것은 아닐까? 그 반지가 그 '어느 아가씨'의 애인이 준 것이라면? 지금쯤 애인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손가락에 대일밴드를 붙이고 찾을 때까지 시간을 벌고 있는 중이라면?

못 찾을 텐데..... 내가 가지고 있는데.....







4


반지가 내 약지에 딱 맞았다. 그냥 내가 가지기로 했다.

정말 고가의 반지라면 필히 신고했겠지만 원가 1만 원의 반지라니,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잃어버린 이가 초등생이라면, '그러길래 왜 몰래 가지고 나오니, 네 업보야!'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고, 잃어버린 이가 애인 있는 아가씨라면 .....음.... 아무런 메시지도 보내지 싶지 않다.

애인 있는 아가씨라니... 쩝.... 너무 행복해 보일 것 같다.

샘나니까 메시지는 패스.


그냥 이제부터는 내 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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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멋대로 골랐다는 불평을 하지 말고

먼저 소설을 집어 들어야 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것이 재밌을 것이기 때문이다.


-헨리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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